서촌에서 살고 싶은 100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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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동네에서 살고, 하고 싶은 걸 하며 일상을 이어가는 서촌 주민 김우정의 집. 마흔아홉 번째 #홈터뷰.

안녕하세요. 오래된 동네를 좋아하고 손으로 만드는 것들을 사랑하는 가정식 패브릭 대표 김우정(@woojung_log)입니다.

현재 서촌에 살고 있어요. 지난해 정동길 신아기념관에 가정식 패브릭(@gajungsic_fabric) 쇼룸을 열게 되면서 좋아하는 작가님들과 협업 전시도 해보고 있고요. ‘언젠가 해봐야지’ 했던 일들을 천천히 해보고 있습니다.

좋아하던 동네에서 살아보기

서촌은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동네였어요. 늘 마땅한 곳이 없나 틈틈이 눈여겨보던 곳이었죠. 2019년에 작업실을 먼저 서촌으로 옮겼고, 이후에 집도 자연스럽게 서촌으로 이사 오게 되었어요. 서울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나지막한 곳이라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동네에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멋진 가게들과 카페들을 지나 골목길을 들어서면, 빨래가 널려 있고 고추 말리는 풍경도 볼 수 있는 게 이 동네의 매력이에요. 인왕산과 수성동 계곡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도 사계절을 물씬 느끼며 살 수 있고요. 서울의 중심이지만 도시라기보다 푸근하고 정겨운 마을에 사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창 너머 인왕산

거실 의자에 앉으면 창 너머로 인왕산이 한눈에 펼쳐져요. 이 집을 처음 보러 왔던 날, 이 풍경을 보고 첫눈에 반해 결심하게 되었죠. 구축 주택에서나 볼 수 있는 특이한 구조도 재밌었고요.

공사는 기존 구조의 기틀은 유지하면서 바깥 풍경을 안으로 들여올 수 있도록 창 중심으로 작은 공정만 진행했어요. 아, 화장실은 전체적으로 수리가 필요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신경 써서 고쳤어요.

즐거운 주방놀이

주방이 가사 일을 하는 공간이기보다 실험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거실과 주방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고 아일랜드 구조로 바꿔 개방감을 주었고, 창을 따라 우측 안쪽에 싱크대와 조리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주방의 상부장과 하부장은 기존의 것을 살려 리폼하는 정도로 마감했어요.

위층에서 생긴 일

위층을 공유 공간으로 쓰게 된 건, 집이 넓기도 했고 아름다운 인왕산 뷰를 저희 둘만 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웃음)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게 ‘윗층에서 생긴 일(@upstairs_happening)’이라는 프로젝트랍니다. 옥상에서 부는 잔잔한 바람 느끼며 시간을 천천히 부유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지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서촌 살이를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께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고요.

실제 방문하시는 분들을 보면 책을 읽거나 무언가 기록하는 분들이 많아요. 가끔은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클래스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누군가의 옥탑방에서 보내는 시간에 호기심을 갖고 방문을 똑똑 두드리시는 분들을 뵈면 은근히 다 귀여우세요. (웃음)

매일 달라지는 그림

거실 테이블에 남편과 둘러앉아 창밖 풍경을 벗 삼아 아침 먹는 걸 좋아합니다. 매일 마주하는 풍경이지만 매일 달라지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인왕산에게, 창문 앞 은행나무에게, 까치에게 안부를 묻고 오늘의 날씨를 확인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고 모두의 안부를 묻는 것. 오늘도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천천히 시작합니다.

무엇이든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서촌에 살면서 자영업 하는 분들을 자연스럽게 많이 알게 되었어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관계가 깊어지면서 동네 주민분들이 유행을 좇기보다 자기만의 속도와 색깔로 작업을 이어 간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막막하지만 무언가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서촌으로 한번 와 보시라고 응원 레터를 보내고 싶어요. 동네 주민분들이 든든한 응원과 기운을 주실 거거든요. 저 역시 이곳에서 따뜻한 포옹을 받았고 의지했고 또 누군가에겐 작은 도움을 주며 성장했으니까요.

서촌 주민의 단골 가게 3

저는 좋아하는 곳을 자주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서촌에서도 늘 가던 곳을 갑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곳은 식사와 카페를 겸하는 에코레(@cafe_ekorre)라는 가게예요. 봄이 오면 봄나물 파스타를 내주시고 겨울이 오면 몽블랑 케이크를 만들어 주시거든요? 때마다 부지런히 계절에 어울리는 메뉴들을 선보이세요. 그래서 언제나 에코레에 가는 날은 설레요. 수제 그레놀라와 계절 잼도 별미랍니다.

가끔 축하할 일이 있거나 술을 곁들이고 싶은 날엔 여래여거(@ewha_yryg)를 갑니다. 심야식당을 연상케 하는 작고 아담한 가게인데요. 고등어봉초밥이 정말 맛있어요. 사장님도 친절하시고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기서 술 한 잔 기울이는 날은 정말 끝내주게 행복한 날이에요.

기운이 축 쳐지고 오늘은 좀 스스로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러 몹시(@mobssie.chocolate.cake)에 갑니다. 정말 찐한 쇼콜라쇼도 맛보실 수 있어요. 눅진한 쇼콜라쇼를 한잔하고 나면 모든 게 괜찮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열여덟 번째 집에서 열아홉 번째 집으로

홈터뷰를 진행하는 사이에 이사가 결정되었어요. 서울살이는 늘 녹록지 않네요. 예상치 못했지만 이렇게 열여덟 번째 집을 고요하고 담담히 회고해 볼 수 있어 좋았네요. 애정을 쏟았던 집이라 사실 아쉽고 또 아쉬워요. 하지만 또 새로운 집에서 보낼 새로운 일상들도 기대됩니다. 열아홉 번째 집을 다행히 잘 구했어요. 다음 집도 복층 구조랍니다. ‘윗층에서 생긴 일’은 계속될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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