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
곳곳에 칠이 벗겨진 나무 문을 열면 1960~1970년대 대학로 풍경이 펼쳐진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는 수식어로 이곳의 의미를 모두 전달하긴 어렵다. ‘학림’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대학생들의 토론 장소이자 음악, 미술, 연극 등 많은 예술인이 단골손님이었던 다방이다. 오갔던 이들을 대변하듯 계산대 위엔 클래식 오디오와 오랜 시간 수집한 LP들이 놓였고, 벽에는 시간이 지나 낡은 예술가들의 흑백사진과 수많은 사람이 남긴 낙서들이 적혀 있다. 이뤄지길 바라는 어떤 소망, 그 시절 유행의 중심에 있던 연예인, 영원한 사랑을 염원하며 적은 연인의 이름.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시절의 단편이 학림에 있다.
터방내
흑석동 골목 깊숙한 곳, 붉은 벽돌로 세워진 비밀 아지트. ‘터방내’는 3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왔다. 원형 테이블과 곡선 형태의 소파, 아치형 인테리어까지 어딜 둘러봐도 모난 구석이 없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정겨운 무드는 마치 언제나 누가 들러도 환영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따금 들러 쉬었다 가고 싶은 동네 사랑방 같은 이곳의 대표 메뉴는 ‘카페 로열’. 황제 나폴레옹이 즐겨 마셨다는 커피로, 각설탕을 티스푼에 올려 불을 붙이면 푸른 불꽃이 일며 녹아 커피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앞으로도 쭉 변함없기를 바라는 달콤 쌉싸래한 맛.
수연산방
상허 이태준이 머물며 수많은 문학작품을 집필한 곳. 이태준의 외동 손녀는 이 고택을 이어받아 동명의 한옥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옥의 전통과 자연의 멋이 적절히 어우러진 이곳은 소박하면서도 화려하다. 창호지로 덮인 문과 창, 문틀 위에 놓인 꽃신, 전통 무늬가 그려진 전등과 테이블.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선보이는 전통차와 다과를 함께 들면 한옥의 고즈넉함이 배가된다. 벽엔 이태준 작가가 생전에 촬영한 가족사진과 손 글씨로 쓴 글이 걸려 있다. 할아버지부터 손녀까지 대를 이어온 아름다움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
미네르바
별과 달로 장식된 카페의 간판 아래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밟고 오르면 잔잔한 클래식과 함께 고소한 원두 향이 진하게 번진다. 신촌에서 가장 오래된 원두커피 전문점 ‘미네르바’는 1975년에 처음 문을 연 이후로 쭉 신촌의 시간과 함께하고 있다. 나무판자로 된 벽과 바닥, 클래식한 체크무늬 식탁보, 고풍스러우면서 아늑한 분위기는 흘러간 시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더치 커피의 원조 격인 미네르바의 대표 메뉴는 ‘사이폰 커피’로, 증기압으로 추출하는 커피는 이곳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 오랜 시간이 지남에도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이곳에는 신촌의 청춘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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