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빌리 차일디시/알코올 중독자였고/강박적으로 자위했으며/좋은 술에 취해 늦은 밤 구토하는 사람/보라색 입술의 여자에게 키스하는 자/사랑의 공허함을 찬양하고/열정의 순간을 갈구하는 시를 쓰는 자 ··· (후략)” 영국의 화가이자 문인, 뮤지션이자 영상감독 빌리 차일디시의 시 ‘Billy Childish’(2010)의 일부. 이름마저 장난스러운 그의 본명은 스티븐 존 햄퍼다. ‘차일디시’는 1977년 밴드 활동을 하던 시절 친구가 어리고 제멋대로라며 붙여준 별명으로, 그의 삶은 스티븐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굴곡의 연속이었다. 친형과 차별을 일삼던 아버지는 빌리가 일곱 살 때 집을 나갔으며, 빌리는 어린 시절 성적 학대를 당하고 난독증으로 16세 때 학교를 중퇴했다. 조선소에서 견급 석공으로 일하며 무려 600장의 그림을 그려 어렵게 입학한 예술학교에서는 음란한 시를 썼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술에 중독돼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엉망인 순간도 있었다. 빌리는 분야를 막론하고 다작하기로 유명하다. 170개 이상의 LP 음반과 40권 이상의 시집과 다수의 소설, 수많은 회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소설 〈My Fault〉 〈Notebooks of a Naked Youth〉와 몇몇 노래 가사만 봐도 알 수 있듯, 빌리의 글과 음악은 공격적이고 거침없다. 반면 그의 그림은 은유적이고 서정적이다. 어릴 때부터 순수한 열정으로 그림에 몰두해 온 그에게 그림은 마음속 도피처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주로 자화상 또는 풍경, 자연을 배경으로 아내와 딸을 그렸는데, 뚜렷한 의도를 밝힌 적은 없으나 그림 속 풍경이 고향 또는 추억이 담긴 여행지라고 했다. 결국 그에게 회화란 삶에서 몇 안 되는 좋은 순간에 머무르려는 시도가 아니었을지. 발길을 붙잡은 아름다운 풍경 속엔 세상을 향한 원망도 자신에 대한 혐오도 없었을 테니. 그렇게 자신을 지키며 한 발짝 나아갔을 것이다. 빌리 차일디시의 전시 〈Now Protected, I Step Forth〉는 리만머핀 서울에서, 8월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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