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인 프로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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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틈틈이 구글 맵에 가고 싶은 장소를 하나씩 저장하던 어느 날, 그 지점들이 프랑스 남부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연스럽게 여행을 계획하게 된 우리 부부의 프랑스 남부 여정은 총 10박 11일. 마르세유, 아를, 아비뇽, 엑상프로방스 그리고 다시 마르세유를 향하는 코스로, 단순히 이동거리와 시간을 고려해 결정한 경로다. 직항편이 없어 이동 시간만 왕복 이틀이 걸렸다. 갈 때는 파리를 경유해 니스에 도착했고, 돌아올 때는 마르세유에서 파리를 경유했다. 여행하기 전에 지내게 될 호텔을 찾아보는 시간은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대부분의 호텔이 예정한 목적지와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동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그 호텔만의 독특하고 흥미로운 히스토리가 있는 곳, 좋아하는 디자이너나 건축가가 설계한 곳에서 지낸다. 장고 끝에 선택한 첫 호텔은 니스에 있는 ‘오텔 라 페루스(Ho^tel La Pe′rouse Nice Baie des Anges)’. 최근에 프랑스 디자인 스튜디오 프리드만 & 베르사체(Friedmann & Versace)와 함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이곳은 이번 여행에서 묵은 호텔 중 가장 트렌디했다. 작고 고풍스러운 입구 뒤로 드러나는 호텔은 각각의 공간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데, 새로운 장소를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재미가 있다. 객실 밖으로 보이는 푸른 지중해 해변도 아름다웠지만, 원형 수영장과 연결된 호텔 식당, 해가 잘 드는 라운지를 잊을 수 없다.

지중해 연안의 휴양지인 코트다쥐르에 있는 ‘르 카네 데 모르(Le Cannet-des-Maures)’는 프랑스 남부 지역의 팜 하우스가 궁금해서 선택한 곳이었다. 유기농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만드는 샤토가 운영하는 숙소다. 우리는 ‘삐그덕’ 소리가 나는 오래된 고재 나무 바닥과 시간이 지났어도 만듦새가 좋은 앤티크 가구가 놓인 방에 묵었는데, 3중으로 겹쳐 있는 나무 프레임 창밖으로 보이는 비옥한 땅과 새로운 절경, 오래된 나무 덕에 매 순간 눈이 즐거웠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정원을 가꾸고 있는 가드너, 장작을 피우며 끼니마다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 무심한 듯 친절하고 센스 넘치는 호텔리어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공간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다소 외진 곳에 있는 호텔임에도 부족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시간을 보냈다. 르 퓌생트레파라드(Le Puy-Sainte-Re′parade)에 있는 ‘샤토 드 퐁스콜롱브(Cha^teau de Fonscolombe)’는 루이 14세 시대의 프랑스 남부 귀족이 머물던 화려한 고성을 옛 스타일로 복원해 호텔로 개조한 곳이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인테리어와 세련된 서비스는 두말할 것 없이 만족스러웠고, 조식이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다. 특별한 요리가 제공된 것은 아니지만 갓 짜낸 듯 신선한 우유, 조금 울퉁불퉁하지만 육즙 가득한 과일, 기본에 충실한 달걀 요리 등이 차려진 소박한 식사는 프랑스 남부 지역에 고유한 땅을 가진 이들만 보여줄 수 있는 바이브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프랑스 남부 여정에서 가장 진한 인상을 남긴 호텔은 아를과 아비뇽 사이에 있는 작고 아담한 마을, 발라브레그(Vallabre′gues)에 있는 ‘메종 살릭스(Maison Salix)’다. 발라브레그는 주민들이 버드나무로 바구니를 만드는 일을 하는 곳인데, 디자인 신에서 유명한 아틀리에 빔(Atelier Vime)도 이곳에 있다. 메종 살릭스의 풍경은 곳곳이 동화책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보낸 시간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방을 채운 가구와 소품 또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적절하게 믹스돼 더욱 자연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건물 역시 오래된 건축물의 아름다운 요소는 유지하고 보수는 최소한 하되 현대의 편의성을 적절하게 담아냈다. 러프한 디테일의 이불과 공예 오브제, 앤티크 가구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은 며칠을 머물며 들여다봐도 놀랍고 새로웠다. 메종 식스 오너의 배려로 호텔 전체는 물론 호텔 맞은편에 공사 중인 헬스장과 서재, 그곳에서 사용하게 될 오브제를 찬찬히 둘러본 시간 또한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여행이 끝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니 프랑스 남부에서 보낸 날들이 더욱 소중하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 가운데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같은 감동으로 빛날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시테 르 코르뷔지에(Site Le Corbusier)’를 방문한 것도 그중 하나다. 마르세유에서 차로 3시간 넘게 걸리는 피르미니(Firminy)에는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생 피에르(Saint-Pierre)’ 성당과 문화센터, 운동장 등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건축가가 마을 대부분의 공공시설을 설계한 것도 놀랍지만,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그곳에서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실내 투어가 가능한 곳이 별도로 있고, 수영장이나 아파트 같은 곳은 외부에서만 볼 수 있었다. 도시와 마을 사람들이 그곳을 설계한 건축가의 지침 그대로 유지 · 보수를 진행하고,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로크브륀카프-마르탱(Roquebrune-Cap-Martin) 해변의 리비에라 절벽에 자리하고 에일린 그레이의 첫 번째 건축 프로젝트 작품인 ‘E-1027’ 빌라를 찾은 순간도 잊을 수 없다. 그녀가 연인이자 건축평론가인 장 바도비치의 조언을 바탕으로 1926~1929년 동안 완성한 이곳은 프랑스 남부 해변에 있다.

두 사람의 이니셜을 조합한 이름마저 비밀스럽고 사랑스러운 이곳은 이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1만 명이 넘는 관람자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학창시절 사진과 도면으로 보고 또 봐도 도통 이해되지 않던 구조들이 실제로 보니 너무나 자연스럽고 우아한 결과물이었다. 오랜 수수께끼가 모두 풀리는 기분이었는데, 낯선 사람들과 투어를 하는 내내 놀라움을 감추기 어려울 정도였다. 프랑스 남부 여행에서 돌아오던 길에 정한 다음 여행지는 이탈리아 남부. 이번에도 마음이 끌리는 몰타 섬의 호텔을 찾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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