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이라는 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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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복잡은 사실 단순을 위한 것이다

사진 Volkswagen AG
사진 Volkswagen AG

언제나 세상은 뜨겁다. 한 순간도 차갑거나 미지근한 적이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챗지피티(Chat GPT) 이슈로 열기 후끈하다. 맞다. 대화형 AI(인공지능) 챗봇 말이다. 그런가 했더니, 또 한쪽에서는 빙(Bing) AI 이야기로 불타오른다. 

몇 해 지나면 어떻게 될까. 당장 내년에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을까. 작년 이맘 때의 핫 이슈는 단연 메타버스(Metaverse)였다. 그리고 NFT. 모두가 가상세계로 들어가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처럼 쫓기듯 허둥거렸다. 메타버스 아니면 비즈니스 세상이 망할 것처럼 굴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과 1년 전이다. 이런 배신감이라니. 

자동차 세상도 그렇다. 무섭게 변한다. 모터를 쓰든 엔진을 쓰든, 고성능 컴퓨터와 첨단 IT가 선사하는 온갖 기능과 사양, 엄청나게 복잡하고 전자화된 자동차를 우리는 단순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올드카가 아니라 클래식이야, 말장난을 해봐야 그저 구시대 유물.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건 아니다. 그저 어지러워 잠시 생각을 단순히 멈춰 본다. 나는 어떤 차를 원했나.

이런 차를 원했다; 넓고 커다란 차. 올라 앉으면 구름에 얹힌 듯 포근하고 승차감이 좋아 아무리 거친 길도 매끈하게 달려 주는 차. 넓은 보닛과 위로 열리는 뚜껑. 누가 봐도 감탄사를 터트리는 차. 사방의 시선을 압도하는 차. 우렁찬 엔진음으로 지구끝까지라도 단숨에 도달할 것 같은 차. 기분에 따라 실내 온도를 자동 조절해주고 말로도 온갖 기능을 제어하는 차. 콘서트홀에서 듣는 것처럼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려주는 하이엔드 오디오가 달린 차. 지루하면 말도 걸어주고 마사지도 해주며 온갖 질문을 다 받아주는 차. 잠깐 졸아도 차선을 잡아주고 누가 끼어들면 자동으로 멈추고 터치 몇 번으로 목적지까지 편안하고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차….

아니다. 실은 이런 차를 원한다; 계기판 두 개. 속도계와 RPM 게이지. 오디오 버튼 두 개. 그리고 에어컨 버튼. 장식 없는 스티어링 휠. 창문 여닫는 도어 손잡이. 클러치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 그리고 가속페달이 나란히. 시트는 좀 딱딱해도 몸에 꼭 맞고, 울퉁불퉁 길을 달리면 고스란히 바닥이 느껴지는 차. 내가 온전히 핸들링하는 기분이 드는 다소곳한 차. 이런 차를 원한다.

지금 보고 있는 차가 꼭 그렇다. 1974년에 나온 골프 1세대 실내 사진이다. 이렇게 심플할 수가 있나. 요즘 차에 비하면 거의 아무 것도 없는 차나 마찬가지다. 가고 서고 도는 데 필요한 기능만 달려 있다. 물론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버튼과 창문 여닫이는 필요하지. 그 외엔 정말이지 심플 자체다. 아무 것도 없는데 매력적이다.

이런 차를 타고 싶다. 지금 차들은 무섭다. 무언가 너무 많다. 나를 위하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나를 안전하게 해주고 나를 즐겁게 해주는 기능이 많아도 너무 많다. 과잉도 이런 과잉이 없다. 차를 번쩍 들고 툴툴 털어 필요한 기능만 남기고 싶다. 그래서 가볍게 골목을 벗어나 바람과 길을 느끼며 천천히 달리고 싶다.

글을 쓰려고 받은 폭스바겐 1세대 골프 실내 사진을 들여다보다 문득 상상을 펼쳐본다. 자꾸 더하고 더하여 온갖 과잉으로 넘쳐나는 욕망의 시절에 떠올리는 낭만적인 생각. 구시대 유물, 타 본 적도 없고, 있다 해도 이제 다시 저 시절로 돌아갈 수 없으리란 걸 알면서도.

글·이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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