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지역에서 가동 중이거나 짓기로 결정한 한국 기업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들이 연간 생산 기준 560GWh(기가와트시)를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파나소닉의 10배 가까운 규모로 북미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견제로 북미 진출이 막힌 중국 기업들은 유럽으로 빠르게 눈을 돌리면서 한국과의 정면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29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한국 배터리 3사가 단독 공장·합작법인(JV)을 통해 미국과 캐나다에 가동 중이거나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은 15곳이다. 이들이 모두 완공됐을 때 생산 규모는 고성능 전기차 560만 대가량을 생산할 수 있는 560GWh에 달한다. 현재 계획이 발표된 공장 대부분은 2025년 완공 예정이다. 북미에는 중국 배터리 기업 공장은 없다. 일본 파나소닉이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 65GWh 이상의 생산능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되지만, 한국 기업의 9분의 1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현대자동차가 조지아주 합작공장을 짓기로 결정하면서 북미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배터리 기업 중 가장 많은 8개 공장을 갖추게 됐다. SK온은 단독 공장과 포드 및 현대차 합작공장, 삼성SDI는 스텔란티스,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공장을 추진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2021년 64GWh에서 2025년 453GWh로 연평균 63%의 성장이 예상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32년까지 판매되는 신차의 67%를 전기차로 대체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성장세는 더 가팔라질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방지법(IRA) 등으로 중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이 쉽지 않다는 점도 한국 기업의 ‘북미 러시’를 활발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IRA는 북미 지역에 생산 및 조립 시설을 둔 경우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중국 등 ‘우려 국가’ 제조 배터리를 탑재할 경우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중국이 활로로 찾은 곳은 한국이 점유율 1위를 차지해 왔던 유럽 시장이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전기차 시장인 유럽 역시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매년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 중국 CATL은 현재 14GWh 규모 공장을 독일에서 가동 중인데 2028년까지 독일, 헝가리에 186GWh 규모를 증설해 총 200GWh의 생산설비를 갖출 계획이다. 또 중국 SVOLT와 궈쉬안하이테크도 독일에 각각 56GWh, 6GWh 규모 공장을 건설할 방침이다. 전기차와 배터리 모두 생산하는 BYD는 유럽 첫 공장을 짓기 위해 투자처를 검토 중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우드매킨지는 유럽 내 중국 기업의 배터리 생산능력이 2025년 264GWh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폴란드·튀르키예(LG에너지솔루션), 헝가리(SK온, 삼성SDI) 등에 한국 기업이 가동 중이거나 짓고 있는 공장 규모(232.5GWh)보다 크다.
여기에 신흥 시장인 동남아시아도 전기차 배터리의 새로운 ‘한중 대결’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인도네시아에 현대차와 합작공장을 지었고, 삼성SDI는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에 자동차 배터리 등을 생산하는 공장을 갖추고 있다. BYD는 태국에 내년 생산을 목표로 공장을 짓고 있고, CATL은 인도네시아 국영 기업과 손잡고 전지 재료부터 생산까지 아우르는 공장을 짓고 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