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 요금, 확 바뀔 판… ‘다 쓴 배터리’가 충전소 핵심 된 이유
이콘밍글 조회수


전기차에서 꺼낸 ‘다 쓴 배터리’가 급속충전소의 심장으로 다시 뛰게 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이 LG에너지솔루션, 원익피앤이, 현대엔지니어링 등 4개사와 손잡고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재활용하는 ‘UBESS(Used Battery Energy Storage System)’ 실증 사업을 본격화했다.
E-GMP 배터리, 충전소 ESS로 재탄생
이번 실증의 핵심은 현대차·기아의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 기반 차량에서 회수한 사용 후 배터리팩을 200kWh 규모의 UBESS 시스템으로 재구성한 데 있다. E-GMP 사용 후 배터리를 ESS로 활용하는 것은 국내 첫 사례다.
운영 방식은 ‘피크컷(Peak Cut)’ 전략을 적용한다. 전기요금이 낮은 심야·오프피크 시간대에 전력을 UBESS에 충전한 뒤, 요금이 높은 피크 시간대에 급속충전기를 통해 전기차에 방전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충전소 사업자의 전력비용 구조를 최적화하고, 전력망 피크 부하를 완화하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린다.
5개사 역할 분담…기술·사업성 동시 검증

컨소시엄 5개사는 각자의 전문성을 명확히 나눠 맡았다. 현대차·기아는 사용 후 배터리 확보와 사업 모델 개발을 주도하고, LG에너지솔루션은 회수된 배터리팩으로 UBESS를 제작하며 진단·운영 기술로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한다. 원익피앤이는 충전기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설비 운영을 담당하고, 현대엔지니어링은 실제 사업 환경에서의 수익성과 전기차 충전 인프라(EVC) 보급 사업과의 연계 가능성을 평가한다.
검증 항목은 ▲충·방전 제어 알고리즘 ▲시스템 안전성·신뢰성 ▲배터리 성능 유지 특성 ▲충전 서비스 품질 및 운영 효율성 등 네 가지다. 사용 후 배터리 특유의 셀 편차와 열화 패턴, 그리고 화재 위험성 등 안전 이슈가 상용화의 핵심 관문인 만큼, 안전성 검증이 사실상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한다.
해외 실증 경험에 정책 순풍까지
현대차그룹은 이미 2021년 9월 미국 텍사스에서 전력망 연계형 UBESS를 시험했고, 2022년 8월에는 기아가 독일 베를린에 쏘울 EV 사용 후 배터리를 활용한 72kWh급 UBESS를 가동한 바 있다. 이번 화성 실증 규모(200kWh)는 베를린 설비 대비 약 2.8배에 달하며, 해외 경험을 국내 상용화로 연결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제도적 환경도 우호적이다. 지난 8월 20일 정부는 폐이차전지 재활용 기준을 개선해 ESS·무정전전원장치(UPS)용 폐배터리를 위한 별도 분류 코드를 신설하고, 전국 7개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의 수거 대상을 ESS까지 확대했다. UBESS 실증 착수 시점과 정부 정책 개편이 맞물리면서, 산업과 제도가 동시에 궤도에 오르는 형국이다.
다만 UBESS의 상용화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배터리 회수·진단·팩 재구성 비용, ESS 설치·운영비, 전력 요금 차익 등을 종합한 투자 대비 수익(ROI)이 확보돼야 하며, 현재는 200kWh 규모의 파일럿 실증 단계다. 장기 운영 데이터가 축적되기 전까지 경제성은 미지수다. ‘다 쓴 배터리’를 충전 인프라의 자산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 현장에서 증명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