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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이곳 같으면 좋겠어요” DMZ피스트레인에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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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철원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

경계 없는 화합의 장… 비결은 ‘환대’

흰머리가 지긋한 노인 관객이 춤을 추자 그를 둘러싼 젊은 관객들이 환호한다. 바닥 분수에서는 어린이와 청년들이 즉석에서 댄스배틀을 벌이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 관객과 비장애인 관객이 같은 속도로 원을 그리며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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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26/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영화 속 유토피아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지만 지난 12일~14일 3일간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실제 모습이다. 국내 최전방 철원군에서 7년째 열리고 있는 이 축제는 올해 약 2만 5000명의 관객을 모으며 막을 내렸다.

직접 찾은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방문객들이 왜 입을 모아 “세상이 다 이곳 같으면 좋겠다”고 말하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하는 현장이었다.

1. 분단의 땅 위에서 경계 없는 축제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DMZ)와 맞닿은 강원 철원 고석정. 분단의 상징 같은 이곳에서 매년 조금은 역설적인 축제가 열린다. 음악으로 정치와 이념, 세대와 국적의 경계를 넘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하 DMZ피스트레인)이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26/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2018년 시작해 올해 7회째를 맞은 DMZ피스트레인은 일반적인 음악 페스티벌과는 결이 다르다. 세대와 장르, 국적을 넘나드는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오르고 과거 북한 노동당사 앞에서의 공연이나 DMZ 용양보 산책 등 분단의 역사와 철원의 자연을 무대 삼는 기획을 선보인다.

그래서 아티스트 라인업을 따라 관객이 움직이는 여타 페스티벌과 달리 ‘누가 나오든 일단 예매하고 보는’ 재방문 관객이 유독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DMZ피스트레인에 열광하는 이유는 공연이나 프로그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남과 북으로 나뉜 선명한 경계 위에서 열리는 축제지만 정작 이곳에서는 좀처럼 경계를 찾아보기 어렵다.

2. 환대라는 멍석 위 춤판

“라인업에 적혀 있는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자기만의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요. 올해도 그런 무대를 많이 목격하는 게 목표예요.” 2년째 페스티벌을 찾고 있는 관람객 박주은(28)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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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관객이 성인 관객에게 둘러싸여 춤을 추고 있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그의 말처럼 DMZ피스트레인에서는 모두가 아티스트다. 주최 측이 마련한 스테이지뿐 아니라 축제장 곳곳에서 새로운 무대가 생겨난다. 관객석에서 즉석 댄스배틀이 벌어지고 누군가는 직접 가져온 악기를 연주한다. 공연 중에도 관객들은 무대를 등진 채 서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관객이 서 있는 그 자리가 곧 무대가 되는 것이다.

분수 스테이지에서 물을 맞으며 춤을 추는 관객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가장 상징적인 곳은 분수 스테이지다. 분수대와 스페인 이비자를 합쳐 ‘분비자’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곳은 서울커뮤니티라디오(SCR)와 함께 운영하는 DJ 스테이지다.

입장권이 없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이곳에서는 사흘 내내 음악이 이어졌다. 철원 주민부터 축제를 찾은 관객들까지 하나둘 분수대로 뛰어들어 물을 맞으며 춤을 췄다.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기차놀이를 하는가 하면 어느새 DJ가 있는 무대 위까지 올라가 함께 몸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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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 스테이지에서 펼쳐진 기차놀이/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분수 스테이지를 무대로 만든 한 관객/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관객을 ‘움직이는 무대’로 만드는 힘은 개인의 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아래에는 누구나 올라설 수 있는 환대라는 멍석이 깔려있다.

‘환대’는 DMZ피스트레인의 실질적인 운영 방식이다. DMZ피스트레인은 철원군민과 철원 지역 복무 군인에게 무료입장을 제공한다. 어린이 관객을 위한 키즈존과 수유실을 운영하고, 올해는 장애인과 어린이, 임산부, 노년층 등 누구나 편안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컴포터블 존’과 관람 지원 프로그램 ‘우정원정대’도 운영했다.

컴포터블 존에서 무대를 즐기는 관객/사진=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공식 SNS

이러한 운영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들을 축제장으로 불러 모았다. 걸음마를 막 뗀 아이부터 노년층, 군인과 외국인까지 세대와 국적, 장애 유무를 넘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어울렸다. 누군가를 특별히 배려하거나 의식하기보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얽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중년의 철원군민과 청년 관객들이 함께 춤추는 모습/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현장에서 만난 김다인(26) 씨는 지난해부터 부모님과 함께 방문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께서 평소 제가 즐기는 공연 문화를 궁금해하셨는데, 이곳은 세대 구분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분위기라 지난해부터 함께 오고 있다”며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부모님이 아는 가수가 함께 출연하는 점도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는 인순이부터 이승열, 더 발룬티어스, 신인류까지 세대를 넘나드는 아티스트들이 한 무대에 섰다.

3. 음악은 거들 뿐, 곳곳에서 일어나는 ‘인간활동’

“피스트레인에는 헤드라이너가 없습니다.”

‘노 헤드라이너’는 DMZ피스트레인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가치다. 축제는 특정 아티스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장르와 시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뮤지션을 초청하지만 인기 순으로 무대를 배치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관객들은 특정 공연보다 축제 전체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다양성을 즐기기 위해 모인다.

활동 부스를 즐기는 관객/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무대가 축제의 전부가 아닌 만큼 음악은 때로 배경이 되기도 했다.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공연이 한창일 때도 관객들은 무대를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축제를 즐겼다. 깃발 만들기, 캐리커처 등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형 부스도 마련됐다.

공연장 바로 아래 위치한 한탄강 협곡. 마치 문화처럼 통통배 탑승객을 향해 손을 흔든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명상 프로그램/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공연장 옆 한탄강 협곡에는 통통배를 타거나 모래사장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통통배가 지나갈 때마다 모래사장에 앉은 관객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반기듯 손을 흔들고 래프팅 보트가 지나가면 “힘내라! 영차!”를 외치며 응원을 보낸다.

축제는 공연장 밖에서도 계속된다.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민간인 출입이 제한된 남방한계선 일대를 걷는 용양보 아침 산책 프로그램을 비롯해 소이산 트레킹, 요가와 명상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과거 북한의 노동당사였던 건물 앞에서 그룹 모허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철원의 역사 또한 축제의 무대였다. DMZ피스트레인은 월정리역, 철원제일교회 터 등 역사적인 공간을 발굴해 특별한 공연을 선보여 왔다. 올해는 14일 아침 노동당사를 배경으로 무대가 펼쳐졌다. 북한의 노동당사였던 건물은 전쟁 이후 분단된 철원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공연 전 무대에 오른 이수정 DMZ피스트레인 예술 감독은 “전쟁의 역사가 흔적으로 남은 노동당사에서 평화로운 음악을 들으며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참극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를 시작하는 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진 모허와 해파의 노래는 새소리와 뒤섞인 바람을 타고 노동당사 앞에 모인 관객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축제의 인기 포토존 임꺽정 동상/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올해 DMZ피스트레인의 키 메시지는 ‘인간활동’이었다. 인간으로 ‘잘 살아 있음’을 서로 감각하고 확인하자는 의미다. 클릭 한 번으로 무엇이든 구현할 수 있는 시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곱씹으며 즐겼던 축제의 끝에서 브라이언 헤어의 저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떠올랐다. 그는 인간이 서로의 시선을 읽고 교감하는 친화력 덕분에 진화한 종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흰자와 검은자의 경계가 뚜렷해 상대가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있고, 이 눈 맞춤을 통해 소통과 협력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어쩌면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활동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함께 춤추는 일. 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반갑게 인사하는 일. 그리고 타인의 아픔과 지난 역사를 외면하지 않는 일. DMZ피스트레인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치를 ‘축제’라는 이름으로 증명해 내고 있었다.

철원(강원)=김지은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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