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투어 역사 여행지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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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는 그동안의 제주도 투어 중 부근을 자주 오가면서도 이번 여행에서 처음 들러보는 곳으로 몽골 침입 당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삼별초가 최후까지 항전했던 곳으로 국가사적 제396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항파두리항몽유적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항파두리로 50
제주도 투어 역사 여행지 클립.
이곳은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휴게소이자 주차장. 쿠니는 막간을 이용해 충전도 하기로 한다.
언젠가부터 제주도 투어를 하며 전기차를 렌트하는 편이며 가장 큰 이유는 쉬면서 충전할 곳이 정말 많다는 점이다.
이 조용한 도로는 중산간서로와 광상로를 연결하는 2차선 도로로 ‘항파두리로’라고 부른다. 길게 뻗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이 그리 많지 않아 마치 막다른 길인가 싶을 정도인데 제주도 투어를 하며 관광지를 조금 벗어난 연결도로를 달리다 보면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
제주 항몽유적지 휴게소 바로 아래 삼각형으로 다듬어진 잔디광장은 그냥 그 자체로 휴게 광장과 같은 느낌.
바람이 선선하게 오가는 계절엔 참 괜찮아 보이는 포토존이다.
차량이 어색하게 지나다니는 ‘항파두리로’를 심신 편안히 건너 이제부터 제주도 투어 중에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탐방을 시작한다.
여름 나뭇잎 가득하면 참 멋진 그늘을 선사할 곳인데 굳은 나무줄기에서 뻗은 나뭇가지는 신비스럽기도 하고 괴기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쇠울타리를 쳐 놓은 곳에 돌멩이들.
설명글을 읽어보니 옛날 삼별초의 김통정 장군이 이곳 제주 항파두리 항파두성을 쌓고 동, 서, 남, 북의 4대문을 내면서 그 돌쩌귀로 사용했던 것이라 추정하고 있는 ‘돌쩌귀’인데 그저 그럴 것이다는 추정일 뿐 확인된 건 아니다.
저곳에 놓인 의자와 책상은 어떤 의미일까?
군기와 오방기가 전시되어 있다. 군기는 부대를 표시하는 깃발로 고려 시대 전쟁 시에는 부대기에 창을 꽂아 사용했으며 평상시에는 병영의 전열에 위치하여 권위나 위엄을 상징했다. 오방기는 방위를 나타내는 깃발로 검은색은 북방, 붉은색은 남방, 푸른색은 동방, 흰색은 서방, 황색은 중앙을 의미한다.
외삼문 중앙을 통해 보이는 삼별초 항거 순의비.
삼별초(三別抄) 군은 강화도에서 진용을 정비하고 근거지를 진도로 옮겨 대몽 항전을 펼쳤으나 고려 원종 13년인 1271년 5월 진도가 고려, 몽골 연합군에게 함락되자 김통정 장군은 잔여세력을 이끌고 제주도에 들어와 이곳 항파두리에 진지를 마련했다. 삼별초라 함은 고려 무신정권 시절에 탄생한 무신정권 친위대인 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의 총칭이며 여몽전쟁 이후 삼별초의 난을 일으켰다.
당시 고려에서는 특별히 선발한 병사들로 이루어진 부대를 별초(別抄)라 하였다
삼별초 항거 순의비를 잠시 마주하고,
제주 항파두리 내성지를 둘러본다.
흔하디흔한 제주도 관광지로 보기엔 심심하겠으나 역사적 관점에서 제주도 투어 중에 한 번쯤은 들러볼 만하다.
항파두리성은 내성과 외성의 이중 구조였으며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고 내성의 둘레는 약 750m에 높이는 약 1~1.5m 정도였다. 그리고 내성 곳곳에서 청자, 기와, 청동 화살촉, 철창, 철제 갑옷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다.
당시 토성이었던 것을 석성으로 복원한 것인지 토성을 추후 석성으로 중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삼별초의 탄생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최 씨 무신정권의 사병조직부터 알아야 한다.
최 씨 무신정권 시절 최우는 자신의 권력을 보호하고 신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사병 조직 야별초를 만들었다. 그러나 몽골과의 전쟁이 계속되자 야별초를 확대해 정규군 조직으로 재편해 좌별초, 우별초로 나눴고, 여기에 몽골 제국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하거나 송환된 사람들을 모은 신의군까지 합쳐서 마침내 삼별초를 이루게 된다.
멀리로 올레길을 걷고 계시는 분들을 보게 된다.
이곳은 제주 올레길 16코스.
고내포구를 들머리로 해 신엄해안 – 구엄마을 – 수산봉 –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 호끌락 키즈북카페에 이르기까지 14.8km 구간으로 애월 바다와 중산간 올레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삼별초 항거 순의비를 바라보며 왜 삼별초가 난을 일으켜야만 했는가를 되새겨 본다.
제주도 투어를 하며 이곳 항몽유적지를 들러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역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다.
흔히 관광지라 말하기엔 아무런 변화도 없고 무미건조해 보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면 항몽유적 전시관을 들러보는 것도 당연한 일인 듯.
전시관에서는 항파두성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역사적 이야기도 어느 정도 정리해 소개한다.
다만, 몽골의 침약에 맞서 끝까지 항거한 고려인의 정서가 서린 마지막 보루라는 형식의 소개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시작이 그러했다 하더라도 국내 정치적인 상황, 개인의 사리사욕도 함께 알려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
과거의 일을 모두 정확히 기술하는 것은 어렵겠으나 의도한 방향대로 임의의 정리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인정해야 할 부분은 인정하고 아니라 생각되는 부분은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이 맞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금은 아쉬운 점이 있음을 말씀드리며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소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