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뉴욕을 “대부분의 도시는 명사지만, 뉴욕은 동사다”라고 표현했다. 도시 전체가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의미다.
영화 감독 우디 앨런도 뉴욕을 사랑했다. 그는 “5분 안에 박물관이나 콘서트에 갈 수 있기 때문”이라며 도시의 문화 접근성에 감탄했다. 실제로 뉴욕 거리를 걸어보면 이해가 된다. 브런치를 마치고 나와 몇 걸음만 옮겨도 미술관 입구에 닿는다.
18세기 로마, 19세기 파리에 이어 20세기부터 예술의 중심은 뉴욕이다. 특히 1940~50년대, 전쟁을 피해 유럽에서 이주한 예술가들이 이곳에 머물며 현대 미술의 흐름이 뉴욕으로 옮겨졌다.
뉴욕의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 브로드웨이의 불빛, 루프탑 바, 거리 음식과 쇼핑이 전부가 아니다. 미드타운에서 어퍼이스트까지 이어지는 클래식 루트를 따라가면, 더 깊은 뉴욕을 만날 수 있다. 복잡한 도심에 숨겨진 차분한 밀도가 느껴진다.
이민자의 나라답게 다양한 이민자들이 만든 문화는 뉴욕의 창작 에너지가 넘친다. 된다. 여러 언어와 전통, 감각이 도시를 풍요롭게 만든다. 이런 다양성이 뉴욕을 여전히 예술의 수도로 남게 하는 이유다. 뉴욕 예술 세계를 지탱하는 두 곳을 방문했다.
Point. 1 모건 라이브러리&뮤지엄 (Morgan Library & Museum) |
오전 10시, 개장 전부터 입구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더 빨라진다. 미드타운 매디슨에비뉴에 위치한 모건 라이브러리&뮤지엄은 금융계 거물이자 예술 후원자 존 피어먼트 모건(John Pierpont Morgan, 이하 J. P. 모건)이 원래 자신이 모은 희귀 서적과 예술품을 보관하려고 만든 개인 도서관이었다.
내부로 들어서면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석조건물과 화려한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건축가 찰스 매킴이 설계한 건물은 이 자체로 예술품이다.
1924년, 그의 아들이 이곳을 공공기관으로 전환하며 일반에 공개했다. 월스트리트까지 가는게 시간이 빠듯하다면 이곳만 들러도 충분하다. J.P. 모건이라는 인물 자체가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당시 그가 살았던 인생이 곧 미국 자본주의 상징인 투자은행의 역사였기에 이곳에서 그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건물 뒤쪽으로 가면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렌조 피아노가 만든 유리와 철골 구조의 현대적인 공간이 옛 건물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가장 멋진 곳은 유리 천장이 있는 중앙 공간이다. 실내지만 하늘이 보이고 탁 트인 느낌이 든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J.P. 모건 개인 도서관(East Room)이다. 이곳 백미는 웅장한 3층 높이의 월넛 책장이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메운 책장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유럽 문학 작품과 희귀 서적들이 가득하고, 천장은 별자리로 꾸며져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여기에 낮은 조도와 붉은빛이 감도는 고풍스러운 실내, 바닥부터 천장까지 꽉 찬 책장이 압도적이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소장품 범위가 다양하다. 희귀 서적과 역사가 담긴 필사본들이 풍부하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필사본, 메소포타미아의 인장과 석판, 미켈란젤로와 세잔의 드로잉. 유리 케이스 안에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원고와 제인 오스틴, 에드거 앨런 포의 자필 문서를 전시했다. 앤디 워홀 작품도 있다.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구텐베르크 성경’이 있는 공간이다. 중세 필사본 중에서도 매우 귀해 아침부터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구텐베르크 성경 3권을 한곳에 모아둔 기관이다. 전 세계에 단 49권만 남아있는 이 희귀한 성경 중 가장 많은 수를 보유하고 있다.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된 이 성경은 인쇄 기술이 인류 역사를 어떻게 바꿨는지 보여주는 시작점이다. 책의 역사에 관심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한다.
한적한 오후, 이곳에 앉아 필사본 한 장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들 표정은 뉴욕의 또 다른 풍경이다. 문화적 가치보다 이 공간의 밀도와 고요한 흐름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일반 박물관이나 도서관과는 다른 느낌이다. 직접 시간 속으로 걸어가는 기분이랄까. 밖으로 나가면 복잡한 뉴욕 한복판이지만 믿기지 않을 만큼 다른 세계다.
Point. 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ET) |
바람은 차가웠지만,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뉴욕 첫 방문이든, 수십 번째 방문이든 모두가 찾는 곳이다.
뉴욕커들이 ‘멧’이라 부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은 부촌인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영국 박물관에 이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뉴요커들은 간단히 ‘멧’이라고 부른다. 1870년에 문을 연 MET에는 300만 점이 넘는 작품이 있다. 한 건물 안에 인류 미술사가 모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간 주도로 운영하면서도 대중에게 열린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MET 로비는 한 건축가 집안이 설계했다. 외관은 아버지 리처드 모리스 헌트, 내부는 아들 리처드 하울랜드 헌트가 맡았다.
MET과 뉴욕현대미술관(MOMA, 모마)의 차이는 전공 시기(미술관이 주로 다루는 미술의 시대 범위)다. 멧은 19세기 이전을 주로 다룬다. 고대 문명부터 19세기 이전까지다. 19세기가 모호하게 느껴진다면, 반 고흐 작품은 MET에 있다. MET은 역사와 문화적 다양성을 탐구하기 좋고, 모마는 현대와 동시대 미술을 감상하기 좋다.
여기에서도 JP 모건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MET이 세계적 명소가 된 데는 JP 모건의 역할이 컸다. 1904년 그가 관장으로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증축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집트 미술 컬렉션을 찾았다. 왜 많은 미술 중 이집트일까. 이집트는 다른 곳보다 유물이 잘 보존된 피라미드가 있다. 피라미드는 파라오와 중요 유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봉인된 공간이다. 내부 유물과 벽화는 고대 이집트인의 삶, 종교, 우주관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유물로 고대인들의 생각과 삶을 파악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덴두르 신전(Temple of Dendur)은 미술관의 상징같은 존재다. 기원전 15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지어진 이 신전은 1960년대 아스완 댐 건설로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다. 유네스코 유적 보호 프로젝트에 따라, 이집트는 가장 많은 돈을 지원한 미국에 이 신전을 선물로 주기로 했다.
원래 덴두르 신전은 나일강 옆 자연 속에 있었다. MET은 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한쪽 벽을 통째로 유리로 만들고, 신전 주변에 물을 둘러 나일강 옆에 있던 분위기를 실내에 그대로 구현했다. 신전 벽에 새겨진 고대 문자와 부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무기 전시관에서는 중세 기사들 갑옷과 무기를 포함한 전시로 인기가 많다. 이외에도 유럽 회화 작품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반 고흐 자화상,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다. 클로드 모네 작품 변쳔사를 볼 수 있다. 모네는 점차 한 장면을 여러 작품으로 그리는 연작 작업을 시작했다. 시간, 날씨, 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따라가며 그 순간의 생생한 인상을 담아냈다. 모네는 그렇게, 찰나를 시간 속에 머물게 만들었다. 이외에도 렘브란트, 에드가 드가, 폴 세잔, 르누아르 등 규모가 워낙 커서 반나절로는 부족하다.
전시를 나서면 계단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물 앞 계단은 사실상 광장처럼 기능한다. 입장객뿐 아니라 시민 누구나 앉아 쉬다 간다. 미술관 입구가 자연스럽게 일상의 일부가 되는 구조다.
광장에서 한국 작가 이불(Lee Bul)의 작품도 전시 중이다. 오는 6월 10일까지 미술관 정면, 5번가 입구에 롱 테일 헤일로(Long Tail Halo)를 전시한다. 4개 조각상으로 구성했고 외부에서도 감상 가능하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 한국어 가이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행 플랫폼 ‘앳홈트립’에서는 미술사를 전공한 전문가들의 도슨트 투어도 제공한다.
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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