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라고? 한강서 열린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철인 3종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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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기란 어렵다. 느긋하면 뒤처질 거라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 없이 달렸더니 어느새 6월. 반년간 이런저런 경쟁에 지친 이들을 위해 지난 주말 뚝섬한강공원에서 경쟁 없는 축제가 열렸다. 이름부터 여유로운 ‘쉬엄쉬엄 한강 3종 축제’다.


인증사진을 남기는 참가자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지난달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린 쉬엄쉬엄 한강 3종 축제는 한강에서 수영과 달리기, 자전거 경기에 참여하는 행사다. 경쟁이 아니기 때문에 순위도 없고 기록도 재지 않는다. 속도는 물론이고 참가 종목과 순서까지 전부 참가자의 마음. 약 3만 명의 참가자가 기록이 아닌 완주를 목표로, 대회가 아닌 축제로 함께한 쉬엄쉬엄 한강 3종 축제(이하 쉬엄쉬엄 축제)의 생생한 현장을 전한다.


배우 김석훈과 기념 사진을 찍는 참가자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완주 메달을 받은 가족 참가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축제 첫날(30일) 오전, 뚝섬한강공원은 어린 참가자부터 중년의 참가자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도 붐볐다. 축제는 안내 부스에서 입장 팔찌를 수령하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종목을 체험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동시에 출발하는 게 아니다 보니 참가자들이 어느 한 곳에 몰려있기보단 각자의 방식으로 축제를 즐겼다.

1. 난생 첫 한강 수영, 수질은?

“언제 또 한강에서 수영을 해보겠어요.” 참가자들을 가장 기대하게 만든 건 단연 한강 수영. 한강 수영은 300m 초급자 코스와 잠실수중보 일대(1㎞)를 횡단하는 상급자 코스로 나누어 진행됐다.

초급자 코스는 한강수상안정교육장 일대에 마련했다. 이날 수온은 약 22도. 참가자들은 차가운 물에 들어가기 전 직원의 안내에 따라 준비운동을 하고, 심장 부근에 물을 끼얹은 후 차례로 입수했다. “한강에 들어간다니!” 믿을 수 없다는 듯 탄성을 지르는 이도 있었다. 롯데타워와 월드컵 경기장을 배경으로 한강에 입수하는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한강 수영을 기대하고 참가했다는 최지원(25) 씨는 “생각보다 물살이 세지도 않고 재밌어서 모든 종목 완주 후 한 번 더 입수했다”고 밝혔다.

한강 수영/사진=김지은, 문서연 여행+ 기자

이곳에서 ‘쉬엄쉬엄’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멋지게 다이빙하여 맨몸으로 수영하는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튜브를 끼고 살금살금 들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수영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참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명조끼와 튜브, 오리발도 무료로 대여 가능했다. 또한 곳곳에 패들 보트를 탄 안내요원이 있어 안전하게 진행됐다. 중간에 힘이 빠진 참가자가 보트를 잡고 쉬는 모습도 보였다.


한강에 입수하는 참가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수질은 과연 괜찮았을까. 서울시는 행사 전날까지 매일 수질을 점검했다. 시에 따르면 한강의 수질은 국제 철인3종경기 기준에 부합한다. 용존산소농도(DO)는 10ppm 이상으로 ‘매우 좋음’ 상태이며, 수중 대장균은 평균 10마리 이하 (기준 1000 이하), 장구균은 평균 3마리 이하(기준 400 이하)다. 이번 축제에는 오세훈 서울 시장도 참가해 1㎞를 수영하여 횡단했다.


뚝섬 한강공원 야외 수영장/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수영을 전혀 못 하는 참가자나 어린이, 장애인도 즐길 수 있도록 수심이 낮은 뚝섬 한강공원 야외 수영장에서도 진행했다. 13세 이상 참가가 가능한 한강 수영과 달리 이곳은 5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가 가능했다. 부모님과 함께 축제를 찾은 이재이(9) 양은 “더웠는데 수영하니까 시원했다”며 “다음에도 참여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2. 천천히 달리니 주변이 보이네, 달리기&자전거

탁 트인 한강 변에서는 달리기와 자전거 종목이 진행됐다. 초급자 코스는 달리기 5㎞, 자전거 10㎞로, 상급자 코스는 달리기 10㎞, 자전거 20㎞로 이루어졌으며 안전을 위해 10분에 한 번씩 출발했다.


무료로 대여가 가능했던 따릉이/사진=문서연 여행+ 기자

자전거 종목 참가자가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보내고 있다/사진=문서연 여행+ 기자

쉬엄쉬엄 축제의 장점 중 하나는 자전거가 없어도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것.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를 무료로 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쉬엄쉬엄 축제는 따릉이 총 2500대, 새싹 따릉이 100대를 비치했다.

따릉이가 빽빽하게 주차된 진풍경을 마주한 한 참가자는 “지금 서울시 따릉이 다 여기에 있는 것 아니냐”며 놀라워했다. 가족과 함께 축제에 참여한 이 모 씨(45)는 “개인 자전거가 없어도 손쉽게 따릉이를 탈 수 있어 참가하는 데 부담이 적었다”고 밝혔다.


도착 지점이 보이자 질주하는 어린이 참가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환하게 웃으며 완주하는 참가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브이하며 도착 지점에 들어오는 외국인 참가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달리기는 페이스 러너와 함께 출발했다. 출발 이후에는 각자의 속도에 맞춰 걷거나 뛸 수 있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속도는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뿌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완주했으니까 찍어주세요!” 라며 만세를 부르는 참가자도 있었다. 평소 한강 러닝을 즐긴다는 김은아(21) 씨는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천천히 달렸다”며 “힘이 덜 드니까 풍경을 더 즐길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다만 위험한 상황도 눈에 들어왔다. 달리기와 자전거 코스는 대회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인도 이용 가능한 길이었으며 자전거와 달리기 코스가 겹치는 구간도 있어 자칫 사고로 이어지기 쉬워 보였다. 자전거 탑승 시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은 점도 아쉬웠다. 실제로 한 참가자는 “달리면서 좀 위험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도 안전요원이 곳곳에 서서 관리를 잘 하는 듯 보였다”며 소감을 밝혔다.

3.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모두의 축제

쉬엄쉬엄 한강 3종 축제 각종 프로그램/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쉬엄쉬엄 축제에는 참가자는 물론이고 경기에 참가하지 않는 시민들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가득했다. 대형 워터 슬라이드 등 한강에서 액티비티를 즐기는 ‘한강 풍덩존’을 운영했으며 중앙 무대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열려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특히 실내 조정 체험, 체력을 시험해 보는 서울시 체력장, 야외 스파링 등 운동과 관련한 체험이 많았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미니 게임을 즐기는 ‘별별 선수권 대회’도 열렸으며 한강 수상 스포츠 체험도 진행했다.


달리기 후 창포물 머리 감기 체험 중인 참가자/사진=참가자 제공

씨름, 부채 만들기 등 세시풍속을 체험할 수 있는 ‘쉬엄쉬엄 단오제’ 프로그램도 인기였다. 특히 ‘창포물 머리 감기’ 체험은 경기를 끝내고 찾은 참가자들이 많았다. 참가자들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창포물에 멱을 감으며 땀을 식혔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수영을 끝낸 참가자들이 뜨거운 한강 라면을 먹기도 했다. 사전접수자에게 지급한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는 참가자도 보였다. 그야말로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모두의 축제였다.


참가자들은 곳곳에서 피크닉을 즐겼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참가자 최예지(26) 씨는 “인생 첫 철인 3종 경기였는데 회사 다니느라 연습을 많이 못 해 걱정이 많았다”며 “그런데 막상 와보니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서로 ‘파이팅’ 해주는 분위기라 경쟁이 아닌 축제처럼 즐길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글=김지은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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