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실낙원] 가장 잔인한 딜레마, 가장 인간다운 선택

시사위크 조회수  

영훠 ‘실낙원’이 국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CJ ENM
영훠 ‘실낙원’이 국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9년 전 잃은 아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내가 알던 그 아이가 아니다.’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소영은 ‘낙원의 아이들’이라는 AI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 시절의 아들과 만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선우가 9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기적 같은 생존 소식에 세상은 들썩이지만 흉터로 가득한 몸과 서늘한 눈빛, 무엇보다 자신이 기억하는 순수했던 아들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낯선 모습에 소영은 불안감을 느낀다. 소영과 선우, 그리고 AI로 생성된 어린 시절의 선우까지 기묘하고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고 소영은 점점 드러나는 아들의 실체에 충격을 받는데….

영화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 분)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배현성 분)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심리 스릴러다.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이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이다.

흥미롭다. AI로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는 설정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실낙원’은 기술의 가능성이나 위험성을 파고드는 대신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가짜지만 기억 속 모습 그대로인 아들과 진짜지만 너무나 낯선 존재가 돼 돌아온 아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엄마를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AI를 소재로 하지만 영화가 그리는 것은 기술과 인간의 대립이 아닌 이상과 현실의 대비다. ‘낙원의 아이들’ 속 선우는 9년 전 모습 그대로다. 질투하고 떼를 쓰고 슬퍼하는 모습까지 소영의 기억 속 아들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그곳에서 소영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아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호연을 펼친 김현주(왼쪽 위)와 배현성(오른쪽 아래). / CJ ENM
호연을 펼친 김현주(왼쪽 위)와 배현성(오른쪽 아래). / CJ ENM

반면 9년 만에 돌아온 진짜 선우는 몸도 마음도 완전히 달라졌다. 소영이 알지 못하는 시간을 살아냈고, 그 시간 동안 무엇을 겪었는지도 알 수 없다. 가짜인 선우가 오히려 소영이 아는 ‘진짜 아들’에 가깝고, 진짜 선우는 ‘낯선 타인’처럼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일까, 내가 기억하고 사랑했던 모습일까. 눈앞의 현실이 자신이 간직해온 기억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면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 속 AI는 이 질문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다. 

다만 소영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순간 이야기는 힘을 잃는다. 소영의 상황과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선우의 입을 빌려 선택지를 직접 제시하기 때문이다. 소영에게 가상 선우를 다시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 선우의 설명적인 대사가 갑작스럽게 갈등을 만들어내는데, 이야기를 결말로 끌고 가기 위해 설계된 선택처럼 느껴진다.

선우의 감정도 와닿지 않는다. 자신을 찾지 못한 엄마를 향한 원망인지, 자신이 돌아온 뒤에도 가상 선우를 놓지 못하는 엄마를 향한 질투인지, 자신이 겪어온 시간을 이해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분노인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을 법한데, 그 감정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아 선우의 행동이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의문이 앞선다. 그럼에도 소영이 내리는 마지막 선택은 인상적이다. 영화가 던져온 질문을 다시 곱씹게 하며 짙은 여운을 안긴다. 

김현주는 호연을 펼친다. 아들을 되찾은 기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의심, 그럼에도 쉽게 밀어낼 수 없는 모성까지 여러 감정을 오가는 인물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배현성은 기존의 맑고 순수한 이미지를 지우고 거칠고 서늘한 얼굴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러닝타임 100분, 오는 21일 개봉.

이 기사에 대해 공감해주세요!
+1
0
+1
0
+1
0
+1
0
+1
0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