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 이야기’로 웃기고 울리는, 류승룡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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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회사에서 25년 동안 어떻게 일했는지 형이 제일 잘 알잖아.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 아직 쓸모 있는 놈이라고. 나한테 어떻게 이래? 내가 뭘 그렇게 잘못을 했는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마음으로 팀원들과 힘을 모아 9회말 2아웃의 상황에서도 실적을 올린 김낙수(류승룡) 부장이었지만 결국 그를 겨눴던 좌천의 칼날은 피하지 못했다. 배우 류승룡이 JTBC 토일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극본 김홍기 윤혜성·연출 조현탁·김 부장 이야기)에서 이 시대 중년 가장이자 ‘꼰대’ 상사 김낙수 부장님으로 시청자를 웃게 하다가 다시 울게 만들고 있다.
● “아직 쓸모 있다고” 슬픔 안긴 낙수의 절규
류승룡은 ‘김 부장 이야기’에서 현실감 넘치는 ‘찐 부장님’으로 열연을 펼치고 있다. 극 중 낙수는 화목한 가정, 안정된 직장과 명예 등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더 높은 자리를 꿈꾸며 고군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아내와 아들을 제지하며 자신의 방식을 옳다고 믿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보이거나 후배보다 비싼 가방을 사고 “내가 이겼어”라며 쾌재를 부르는 모습 등은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회사의 부장님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낙수는 “대기업 25년 차 부장으로 살아남아서 서울에 아파트 사고 애 대학까지 보낸 인생은 위대한 거야”라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정답이라 여기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를 강조하느라 회사에서도, 가장에서도 마음 둘 곳 없는 외로운 신세다.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려 발버둥 치지만 계속 어긋나는 그의 헛발질은 안타까움과 짠함을 유발한다.
류승룡은 얄미워 보이지만 때로는 인간적이고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낙수의 인생을 특유의 생활연기로 능청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상사에게는 충성을 다하면서도 팀원들에게는 커피 종류부터 보고서의 폰트까지 간섭하는 권위적인 부장 캐릭터를 꼬장꼬장한 말투와 절묘한 표정 연기로 살려내며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서도 낙수는 최선을 다해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이런 벼락치기 영업이 정말로 도움이 되나요?”라는 정성구(정순원) 대리의 물음에 “9회 말 투 아웃에는 그냥 머리 비우는 거야. ‘내가 좋아하는 공 하나 오겠지’ 하고 그냥 풀 스윙하는 거야”라고 답하며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직장인의 처절한 현실을 대변했다.
다만 그러한 간절함에도 낙수는 자리를 잃게 된다. 지난 2일 방송에서는 영업팀 부장 타이틀 방어전에 실패한 낙수의 절규가 먹먹한 여운을 남겼다. 결국 그는 25년간 몸과 마음을 바쳤던 회사인 ACT 영업팀을 떠나 공장 관리직으로 발령이 났다. “나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라며 백정태 상무(유승목)에게 애원하는 장면에서 류승룡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절망과 체념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가족보다 회사를 먼저 챙겼지만 좌천이라는 결말을 맞이한 낙수의 모습은 오늘날 수많은 직장인들의 초상을 닮아 있어 울림을 남겼다.

이날 낙수는 ‘저녁을 먹자’는 백 상무의 연락에 불안감에 휩싸였다. 회사 내 잡음과 함께 공장 안전관리팀장 모집 공고를 본 그는 좌천의 조짐을 직감한다. 저녁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인사고과를 미끼로 팀원들과 영업에 박차를 가한다.
영업 중 입사 동기였던 허태환(이서환)을 경쟁 업체의 일원으로 마주하며 착잡한 감정에 휩싸이지만, 끝내 큰 계약을 따내며 성과를 올린다. 백 상무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집밥 한 상까지 대접하지만 이미 방향이 정해진 물줄기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낙수는 조직 개편으로 인해 영업팀 부장에서 아산 공장 안전관리팀장으로 발령받았다. 한때 낙수와 전국을 누볐던 영업용 자동차도 낡아 폐차 딱지를 받는 장면이 겹쳐져 씁쓸함을 더했다.
송희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김 부장 이야기’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중년 남성이 긴 여정을 거쳐 대기업 부장이 아닌 진정한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회사를 위해 살아온 한 가장의 고민과 성찰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직장인과 중년 세대에게 위로를 건넨다. 현실에서 마주할 법한 캐릭터와 상황으로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전하며 웃기지만 공감되는, ‘웃픈’ 드라마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