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경성크리처’ 작가·감독이 답했다, 시즌1 관련 5가지 궁금증
“그 시간을 견디고 버텨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강은경 작가는 극본을 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의 메시지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 5일 파트2를 공개하면서 시즌1의 전체를 공개한 ‘경성크리처’는 1945년, 일제강점기 막바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뚜껑을 연 작품은 무엇보다 크리처(괴물)가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상대로 벌인 끔찍한 생체실험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 작품을 통해 일본군의 생체실험 부대인 731부대가 재조명되는 한편, 일본 내에서도 반향을 일으키며 K콘텐츠의 저력을 발휘했다. 극중 조선인 포로들은 가토 중좌(최영준) 등에 의해 생체 실험의 희생양이 됐다. ‘경성크리처’ 시즌1은 그렇게 탄생한 괴물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두 청춘인 장태상(박서준)과 윤채옥(한소희)의 비극을 그렸다.
강은경 작가와 연출을 맡은 정동윤 PD를 1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경성크리처’의 세계를 설계한 두 주역에게 시즌1가 만든 궁금증을 물었다. 시즌1에 미처 담지 않아 시청자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 마에다와 최성심의 관계, 태상에 품은 마에다의 마음 등에 대해서도 이들은 속시원한 해설을 내놨다.
● 궁금증 ① … ‘731부대’와 ‘크리처’ 소재로 택한 이유는?
강은경 작가에게 일제강점기가 각인된 작품은 바로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91~1992년)다. 최재성 채시라 박상원 주연의 ‘여명의 눈동자’는 일본 태평양 전쟁 당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하림(박원상)이 어떤 방역부대에 배치됐다고 나와요. 731부대였는데, 관련된 자료를 보다가 정말 ‘헉’ 소리가 나왔죠. 당시 제가 20대였고, 작가도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그 시대를 열어보기 시작했어요.”
일본 관동군 731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하얼빈 일대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등 전쟁 포로를 대상으로 잔혹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이들에게 끌려온 포로들은 이른바 마루타(통나무)라는 암호로 불렸다.
이후 강은경 작가는 데뷔작인 SBS ‘백야3.98’를 ‘여명의 눈동자’를 연출한 고 김종학 PD와 함께했다. 강 작가는 “그때 감독님에게 들었던 이야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돌이켰다.
“오래 전부터 관심을 뒀고 자료를 쌓아오다가 본격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던 강 작가는 정동윤 PD와 만나 “크리처와 접목시켜 사람들이 이 시대에 들어오게 이야기를 펼쳐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성크리처’에서 조선인 포로 최성심(강말금)은 생체실험의 기생물인 ‘나진’이 든 물을 마신 뒤 탄저균이 주입된 혈청을 맞고 괴물의 모습으로 변했다. 성심은 채옥의 엄마. 공격 본능밖에 남지 않은 괴물로 변했지만, 순간 채옥을 알아본다. 가슴 아픈 역사로 탄생한 성심과 그런 성심을 바라보는 채옥의 모습은 그 자체로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생체실험 자료들을 쭉 보다 보니까 모성본능 실험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을 가지고 극한의 상황을 만드는 것이죠.”
“(그 자료를 보고)너무 힘들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괴롭지만, 경성 시대와 크리처가 만나는 포인트를 여기서부터 잡기 시작했죠. 그걸 차근차근 ‘빌드업’시켰어요.” (강은경 작가)
● 궁금증 ② … 정동윤 PD가 집중한 크리처의 차별화는?
이를 연출로 풀어내야 했던 정동윤 PD는 “장르적으로 자극만 추구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본질을 생각했어요. 시리즈가 공개된 후 크리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크리처도 희생된 존재잖아요. 기생충이 뇌에 잠식했는데, ‘엄마의 본능’이 그걸 이겨버린 거죠. 그 점이 다른 크리처와 차별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대의 아픔이 깃든 괴물이기 때문에 정 PD는 그저 “재미로만 소비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정박자를 밟아가면서 연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강은경 작가와 정동윤 PD는 성심의 존재만을 단지 괴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고문을 자행하며 핍박한 이들도 괴물로 바라봤다.
“성심이 상처를 대변하는 괴물이죠. 권력을 가진 이들은 사람들을 도구화하고 강제적으로 다스리려고 하잖아요. 그 시대에 자행됐던 폭압도 하나의 괴물이라고 여기고 접근했죠.” (강은경 작가)
‘경성크리처’는 일본의 식민지 가해 역사를 조명하면서 일본 내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10일 ‘경성크리처’는 일본 넷플릭스에서 ‘톱10’ 부문 6위를 기록 중이다. 7일에는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저도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 시대를 공부하기 시작했거든요.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경성크리처’를 좋아하는 국내, 일본 혹은 글로벌 팬들도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창작물에 공감을 해주는 것 같아요.” (정동윤 PD)
● 궁금증 ③ … 시즌1에 대한 ‘호불호’ 작가·감독의 생각은?
‘경성크리처’는 지난해 12월22일 파트1(7부작) 공개 이후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을 얻었다. 주요 인물이 옹성병원으로 잠입하는 과정이 지루하게 펼쳐지고, 시대극에 버무린 크리처와 로맨스 장르의 조화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부분에서 지적받았다. 느린 전개와 다르게 태상과 채옥의 러브라인은 급작스러워 감정 이입이 어렵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정동윤 PD도 이 같은 반응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즌1를 이렇게 설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초반부터 몰아치면서 갈 수 있었지만 해외에서도 시청하기 때문에 1945년의 시대상을 좀 더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차곡차곡 밟아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선택이)맞는 판단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밟아갔더니 파트2에서는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며 “당연히 호불호 반응에 대해 보고 있고 시즌2에서는 보완을 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강은경 작가도 의견을 보탰다.
“태상에게 채옥은 그 시대에 쉽게 만나지 못했던 여자의 모습이지 않았을까 한다”고 밝힌 강은경 작가는 “주체적이고,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거침이 없다. 토두꾼이라는 이름으로 실종된 사람을 찾지 않는가. 또 소희가 참 예쁘다. 어떤 남자가 안 반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내 나름대로의 개연성은 있었다”고 미소 지었다.
● 궁금증 ④ … 마에다와 최성심은 대체 어떤 관계?
파트2에서 수현이 연기한 마에다가 비극이 탄생한 옹성병원을 지원해온 비밀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마에다가 최성심의 일본 이름인 “세이싱”을 부르며 “선생님”이라고 말해 그녀와의 숨겨진 관계가 있음이 암시됐다. 마에다는 가토 중좌에게 괴물이 된 세이싱이 자신에게 온전히 복종하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두 인물이 관련된 장면들을 (대본에)썼는데 구태의연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지금의 마에다를 보면 그녀가 과거에 어떤 짓을 했을지 유추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에다가 자신의 가정교사였던 세이싱의 남자친구를 짝사랑했다는 설정이긴 했습니다.” (강은경 작가)
하지만 작가가 생각한 이런 설정은 시즌1에 담지 않았다. 연기하는 배우들도 각자 나름의 상상을 보탰다.
“(한)소희는 ‘마에다가 성심을 좋아했나’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마에다와 성심의 관계에 대해서는 확정 지어 전사를 풀기보다는 미루어 짐작하게끔 했어요.” (강은경 작가)
그러면서 마에다에 대해 “관계 부적응자”라고 정의했다. 강 작가는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와도 밀도 있는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는 인물이 마에다”라고 덧붙였다.
● 궁금증 ⑤ … 현대로 넘어온 시즌2의 키워드는? “기억, 망각, 잔재”
‘경성크리처’는 올해 공개되는 시즌2를 통해 끝나지 않는 태상과 채옥의 이야기를 그려낼 예정이다.
시즌2는 1945년 경성에서 2024년 서울로 시간을 뛰어넘어 태상과 모든 것이 닮은 인물 호재와 경성의 봄을 살아낸 채옥이 만나 끝나지 않은 경성의 인연과 운명, 악연을 파헤친다.
강은경 작가가 ‘경성크리처’ 시즌1을 집필할 때 잡은 키워드는 ‘생존’과 ‘실존’이었다. 그 시대를 아프게 견뎌냈던 사람들이 버텨냈고, 그로 인해 후손인 우리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저변에 깔았다.
시즌2에 대해서는 “기억과 망각, 잔재에 관한 이야기”라고 귀띔했다.
“현대로 넘어오지만 과거 기억들이 나오고, 1945년 이후의 기억들이 나올 예정입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