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사망자 늘어난다” 빌 게이츠, 보건 재원 삭감의 재앙적 결과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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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베를린=AP/뉴시스]](https://www.fortunekorea.co.kr/news/photo/202512/50882_44632_1434.jpg)
“꼭 이래야 하는 건 아닙니다.” 빌 게이츠 재단 이사장 빌 게이츠는 2025년 ‘골키퍼스(Goalkeepers)’ 보고서 「We Can’t Stop at Almost」를 이렇게 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인 그는 수십 년간 이어진 아동 사망 감소 흐름이 지금 분기점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의 죽음은 언제나 비극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예방법을 알고 있는 질병으로 아이를 잃는 일은 특히나 참혹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5세 생일을 맞기 전에 숨지는 아동 수가 다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계량분석연구소(IHME)가 실시한 모델링 분석은 충격적인 수치를 보여준다.
2024년 5세 이전에 사망한 아동은 460만 명. 2025년에는 이보다 20만 명가량 늘어나 전 세계 48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5000개가 넘는 교실이 통째로 사라지는 규모다.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쓸 줄 알게 되거나, 신발 끈을 묶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사라지는 셈이다.
이런 암울한 전망은 올해 전 세계 보건 분야 개발원조가 2024년 대비 26.9%나 줄어든 가운데 나왔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 국제개발처(USAID)를 해체하고 대외 원조를 크게 삭감했다.
게이츠는 “아동 사망의 이런 ‘의미 있는 역전(significant reversal)’이 과학과 인류 발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정신이 번쩍 드는 신호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보건 재원이 지금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가 이어지면 결과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각국이 검토 중인 수준인 ‘보건 원조 20% 삭감’이 현실이 되면 2045년까지 추가로 1200만 명의 아동이 사망할 수 있다. 삭감 폭이 30%까지 커질 경우, 추가 아동 사망자는 160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제시했다.
게이츠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발전한 과학과 혁신에 접근할 수 있는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학이 실제로 생명을 구하도록 만들 자금을 모으는 데 실패한 세대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게이츠는 지난 5월, 자신이 보유한 남은 재산 거의 전부, 약 1000억 달러를 재단에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세대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도록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질병 일부를 없애거나 크게 줄이고, 아동 사망률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일에 모든 힘을 쏟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를 재단 혼자선 달성할 수 없다. 특히 부유한 국가들의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거듭 짚고 있다. 치명적인 감염병은 한 번 사라지는 듯해도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0’이 정말 중요한 숫자다.
새 보고서는 지금과 같은 재원 축소가 이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시 한 번 경고했다.
“이 길을 계속 간다면, 우리는 예방 가능한 아동 사망을 거의 끝냈던 세대, 소아마비를 거의 박멸했던 세대, 말라리아를 지도에서 거의 지웠던 세대, HIV를 거의 과거형으로 만들 뻔했던 세대로 기록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게이츠는 지금이 긴축의 시대임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효과가 검증된 해법과 차세대 기술이 존재하며, 이를 활용하면 지금까지 쌓아 올린 성과를 지키고 수백만 명의 어린 생명을 더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당장의 목표는 “지금,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다.
특히 1차 보건의료, 정기 예방접종, 차세대 혁신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각국이 가장 효과적인 개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튼튼한 1차 보건의료 체계에 투자하는 게 지금 시점에서 가장 현명한 투자다.
1인당 연간 100달러가 채 되지 않는 비용으로 폐렴 같은 치명적 질환을 더 일찍 발견하고, 안전한 분만을 보장해 최대 90%의 아동 사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기 예방접종은 여전히 “글로벌 헬스 분야 최고의 투자”로 평가된다.
예방접종에 쓰인 1달러는 경제·사회적 편익으로 54달러를 돌려준다는 추정이 제시되고, 폐렴구균 결합백신(PCV)의 접종 횟수를 줄이는 식의 혁신만으로도 2050년까지 약 20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아울러 2045년까지 새로운 말라리아 퇴치 도구를 본격 도입하면 570만 명의 아동을 살릴 수 있고,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와 B군 연쇄구균(GBS) 같은 위협에 대응하는 새로운 모성 백신을 대규모로 보급할 경우 340만 명의 아동 생명을 추가로 구할 수 있다는 모델링 결과도 소개한다.
나이지리아 곰베주(Gombe State)의 무하마드 이누와 야하야 주지사는 사상 최악의 재정 적자 속에서도 1차 보건의료를 우선순위에 올렸다. 그는 “진전을 이루기 위해 완벽한 조건이 필요하진 않다”며 “필요한 건 분명한 목표와 그 목표를 끝까지 밀어붙일 용기”라고 말했다.
풀뿌리 현장에서 재원 공백을 메우려 나선 이들도 있다. 케냐의 지역사회 보건요원 조세핀 바라사는 ‘어머니 멘토’ 역할을 계속 맡아왔지만, 재정난으로 급여가 끊겼다. 그럼에도 그는 무급 상태로 일을 이어 가고 있다.
“돈은 가져갈 수 있었지만, 제 곁의 여성들을 가져갈 순 없었습니다.” 그는 재단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원 시스템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여성들의 필요는 사라지지 않았고, 저 역시 여기 남아 있습니다.”
/ 글 Nick Lichtenberg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