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 읽는 남자] 건설사, ‘생존을 위해’ 현금흐름을 움켜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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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건설업계가 생존 위기에 흔들리고 있다. 4월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한 중소형 건설사가 9개사에 달한다. 2024년 결산 재무제표가 공시된 이상, 더 이상 재무적 위험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시장이 점 더 악화되면 이익을 내고 있어도, 매출이 있어도 부도가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현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수주산업인 건설업은 계약을 따내고 착공을 해도, 분양이 안 되거나 공사비를 제때 받지 못하면 순식간에 자금난에 빠진다.

건설업의 구조적인 특이점에 건설경기 악화, 국내외 정세 불안이 더해지면서 건설사는 ‘성장’보다 ‘생존’을 요구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건설사에게 생존은 현금확보 그 자체다. 매출보다 더 중요한 게 ‘돈이 실제로 언제 들어오는가’이다. 현금의 시차를 메꾸기 위한 노력은 치열하다.

▲디타워 돈의문. /DL이앤씨
▲디타워 돈의문. /DL이앤씨

건설그룹 DL의 지주사인 DL은 지난해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디타워 돈의문’을 8953억 원에 매각했다. DL그룹이 본사로 사용하던 오피스인데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한 결단을 내렸다. 자금조달에 진심을 보이는 대목이기도 한다.

대우건설의 2024년 기말의 현금성 자산은 1조1000억원을 유지했다. 영업이익이 4031억원 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질적인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최근 3년 동안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그렇지만 현금이 마르지 않도록 대우건설은 장기차입금 등 재무활동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2조원의 장기차입금과 약 4조 원에 달하는 단기차입금, 사채 2685억 원 등이 현금 확보에 사용됐다. 금융비용 부담은 커지고 있지만 버티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한다.

▲2024 ㈜대우건설 사업보고서. /DART
▲2024 ㈜대우건설 사업보고서. /DART

건설사들의 최우선 과제는 현금흐름 관리다. 수많은 건설사들이 현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이 조차 힘든 곳은 부도를 막기 위해 최후의 보루인 법정관리 신청을 하고 있다. 회생절차를 신청한 신동아건설, 대저산업, 삼부토건, 안강산업, 벽산엔지니어링, 삼정기업, 이화공영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매출액은 전년 대비 감소했다. 특히 벽산엔지니어링(-73.7%), 이화공영(-37.4%), 신동아건설(-35.1%) 등 감소 폭이 큰데 매출액의 감소는 → 영업규모 축소 → 고정비 부담 심화 → 현금흐름 악화 연결된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모든 기업의 경영상황이 좋을 리가 없다.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신동아건설 -737억 원, 대저산업 -532억 원, 삼부토건 -1,125억 원 등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적자보다 더 큰 문제는 현금흐름이다.

▲법정관리 건설사 주요 손익지표.
▲법정관리 건설사 주요 손익지표.

실질적 현금 창출 능력이 무너진 이들 기업에게 재무적으로 대환, 대출을 해주는 금융기관이 없다.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경색됐다는 의미다. 공통되게 대부분이 기말의 현금성 자산이 급감했고, 즉 채권자의 압박에 버틸 수 있는 ‘현금 방어막’이 크게 약화된 상태다. 작은 균열(어음, 채권, 단기차입금 등)에 부도가 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이에 대처할 수 있는 건 기업 회생절차 신청(법정관리)을 통해 채권자와의 조정 시간을 버는 방법 뿐이다.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 고금리 장기화, 금융기관 대출 문턱 상승이 맞물리면서 건설사에 대한 신용 리스크가 높아지는 시장 상황에서는 건설사 현금흐름 관리의 세 가지 전략이 필수다. 흔히들 기업이 이익을 내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건설업은 특성상 ‘선투자-후수익’ 구조다. 착공은 했지만 분양이 안 되거나, 공사비 미수금이 쌓이면 곧바로 유동성 위기로 이어진다.

이 와중에 살아남기 위해 건설사들은 현금흐름을 관리해야 한다.

먼저, 신규 투자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과거 같으면 수익을 기대하며 공격적으로 신규 사업지에 뛰어들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당장 현금을 쓰는 대신, 투자 계획을 미루거나 최소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심할 경우 이미 인수했던 부지를 매각하거나, 수주했던 사업을 포기하는 판단도 필요하다. ‘공사 착공 = 지출’이기 때문에, 시작 자체를 늦춰서 현금을 지켜야 한다.

두번째는 기존 프로젝트의 미수금을 빠르게 회수하는 방법이다. 건설사는 시공 후 발주처로부터 공사비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발주처의 사정이 나쁘면 대금 회수가 지연된다.

최근 많은 건설사들이 미수금 회수 전담팀을 운영하거나, 회수 가능성 낮은 채권은 조기에 손절하는 방식으로 ‘가시적인 현금’을 만들려 하고 있다. 심지어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현금을 먼저 확보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마지막 방법은 보유 부동산, 지분 투자 등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다. 특히 2025년 들어 일부 중견 건설사는 사옥, 유휴 부지, 보유 주식 등을 처분해 일시적인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DL그룹 뿐만 아니라 롯데건설 역시 서초구 본사 부지 매각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자산가치가 하락하기 전 ‘팔 수 있을 때 파는’ 실리적 접근법이다. 적당히 좋은 가격에 매각하고, 남은 현금을 쥐는 것이야 말로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서초동 롯데칠성 물류 부지. /연합
▲서초동 롯데칠성 물류 부지. /연합

호황기에는 매출과 이익을 팍팍 키우는 것이 건설사의 최우선 목표였다. 하지만 2025년 현재, 건설업계의 생존법칙은 완전히 달라졌다. 매출이 늘어도, 이익이 나도, 실제로 손에 쥘 현금이 없다면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

건설사들이 택한 전략은 분명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첫째, 신규 투자를 억제하고 둘째, 미수금은 조기에 회수하며 셋째, 비핵심 자산은 매각해 ‘통장에 현금’을 남기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유동성 관리가 아니라, 절박한 선택이다. 앞으로 경기 회복이 늦어지고, 금융시장의 긴축이 이어진다면 ‘현금흐름 관리에 성공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반면 현금이 말라비틀어져 버석거리는 기업은 과거 아무리 좋은 실적을 기록했더라도 속수무책 도태될 수밖에 없다. 

현재 건설업의 본질은 땅을 파는 것이 아니다. 현금을 파내고, 흐르게 하는 것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성장’이 아니라, 기업의 존속(survival)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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