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중동 시장 ‘흔들’?… 사우디 왕자가 직접 띄운 ‘이 전기차’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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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드디어 자국산 전기차를 선보였다.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대만 폭스콘이 합작해 설립한 자동차 브랜드 시어(CEER)는 9월 21일(현지시각) 킹 압둘라 경제도시(KAEC) 내 시어 제조복합단지(CMC)에서 플래그십 전기 세단과 SUV ‘엑소봇(EXOBOT)’을 공식 공개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가 PIF 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직접 참석해 “자동차 산업을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사우디를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거점으로 도약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최고 출력 1111마력, 800V 플랫폼…엑소봇의 스펙
엑소봇은 수치 자체로 시장에 강한 인상을 남기도록 설계됐다. 3모터 사륜구동 시스템을 기반으로 최고 사양 기준 최고 출력 1,111마력, 최대 토크 1,500Nm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세단은 2.1초, SUV는 2.4초만에 도달한다. 최고 속도는 세단 250㎞/h, SUV 210㎞/h다.
먼저 출시되는 한정판 ‘퍼스트 에디션’은 최고 출력 850마력에 112kWh 배터리, 800V 고전압 플랫폼을 장착해 10~80% 충전을 약 30분 이내에 마칠 수 있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세단 670㎞, SUV 560㎞(NEDC 기준)다. 차체 크기는 세단 전장 5,260㎜, SUV 전장 5,020㎜로 휠베이스 3,200㎜의 대형급이다. SUV는 지상고를 240~300㎜까지 조절하는 오프로드 지향 설정도 갖췄다. 세단 트렁크는 기본 424L, 2열 폴딩 시 1,007L, SUV는 각각 402L·1,091L 수준이다. 상위 트림에는 23~24인치 초대형 휠이 적용된다.
차량 개발은 BMW와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이뤄졌고, 전기·전자 아키텍처는 폭스콘이 지원한다. 엑소봇은 2027년부터 사우디 현지에서 판매를 시작한다. 전 차종은 KAEC 내 시어 제조복합단지에서 생산된다.

한국 부품 3사, 핵심 전동화 파워트레인 공급
엑소봇의 심장부에는 한국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트랜시스는 일체형 전기차 구동시스템(EDS)을, 현대케피코는 전기차 차량 제어장치(VCU)와 DC-DC 컨버터를, 신영은 차체 바디 부품을 공급한다. EDS·VCU는 전기차의 동력 흐름과 전자 제어를 담당하는 핵심 고부가가치 부품으로, 엑소봇처럼 고성능·고출력 사양일수록 단가와 수익성이 높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전망대로 사우디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이 2024년 1.1%에서 2030년 31%, 2035년 64%까지 확대된다면, 전동화 파워트레인·배터리 관리·제어 전장 부품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현대트랜시스·현대케피코 등 한국 전동화 부품사 입장에서는 사우디를 교두보로 삼아 MENA 전역의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다.
2030년 7개 차종, 중형·준중형까지…현대·기아와 정면 충돌
그러나 낙관만 할 수 없는 이유도 명확하다. 시어의 확장 전략이 현대차·기아의 핵심 시장을 정조준하기 때문이다. 시어는 엑소봇 세단·SUV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총 7개 모델 라인업을 구축할 계획이다. 2028~2030년 사이에 추가될 대중 모델 5개에는 전기차뿐 아니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와 내연기관차도 포함될 수 있다.
2025년 기준 사우디 신차 판매 857,247대 중 도요타가 점유율 28.6%로 1위를 지켰고, 현대차(15.9%)와 기아(7.8%)가 합산 23.7%로 뒤를 이었다. 현대차 엑센트는 차종별 판매 1위 모델이다. 현대·기아가 강점을 갖는 중형·준중형 세단과 SUV 영역이 바로 시어의 2028년 이후 확장 목표와 정면으로 겹친다.
시장 확대 로드맵도 명확하다. 시어는 사우디 국내 판매를 시작으로 2028년부터 인접국으로 판매를 넓히고, 이후 중동·북아프리카(MENA) 전역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동일 투자자, 다른 브랜드…PIF가 만든 아이러니한 경쟁 구도
이 구도에는 구조적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현대차는 KAEC 내 킹 살만 자동차산업단지에 연 5만 대 생산 규모의 현지 공장(HMMME)을 건설 중으로, 2026년 4분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함께 생산하는 혼류 체제다. 그런데 이 공장의 지분 70%를 PIF가 보유하고 있다. 시어에 자본을 투자한 바로 그 PIF다.
결과적으로 같은 투자자를 둔 두 회사가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여기에 시어가 사우디 현지화청(LCGPA)과 협약을 맺어 관용차 등 정부 조달 물량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도 있다. 현대·기아가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공공·플릿 수요 일부가 정책적으로 시어에 재배분될 수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어가 2028년 대중차 시장에 본격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 지원을 업은 시어가 한국 완성차의 중동 입지를 잠식할 수 있다”며 “현대차·기아가 가격 경쟁력 확보와 함께 정부 조달 시장 대응 전략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 부품사의 호재도 영구적이지 않을 수 있다. 시어는 2034년까지 부품 현지화율 45% 달성을 공개 목표로 제시했다. 현재 한국에서 공급받는 EDS·VCU 등 핵심 부품이 중장기적으로는 사우디 현지 생산 또는 타국 업체로 대체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