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도시에서 발견한 인문학적 공간, 라스베이거스 건축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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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를 카지노와 공연의 도시로만 알고 있다면, 아직 절반만 본 것이다. 스트립의 화려한 네온사인 너머에는 세계 정상급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들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루 루보 뇌 건강 센터(Lou Ruvo Center for Brain Health)

프랭크 게리(Frank Gehry)는 현대 건축의 문법을 완전히 바꾼 거장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그의 건물이 있다. 카지노 거리가 아니다. 도심 재생 구역인 심포니 파크에 자리한 클리블랜드 클리닉 루 루보 뇌 건강 센터(Lou Ruvo Center for Brain Health)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 질환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의료 시설로, 주류 유통업계의 거물 래리 루보(Larry Ruvo)가 치매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설립했다. 게리가 80세에 완성한 작품으로, 설계도면 위에 개인적인 사명감이 고스란히 담겼다.
게리는 처음에 라스베이거스에 건물을 짓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뇌 질환 연구라는 취지, 그리고 자신의 지인이 앓고 있던 헌팅턴병 연구를 포함한다는 조건에 결국 설계를 수락했다. 파격적인 형태는 그렇게 탄생했다.
건물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외관상으로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동으로 나뉜다. 동측은 의료 오피스 동(Medical Office Building)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연구하는 공간이다. 백색의 직각형 블록들이 어긋나게 쌓인 형태로, 뇌의 논리적인 체계와 안정감을 상징한다. 서측은 라이프 액티비티 센터(Life Activity Center)다. 자선 행사와 커뮤니티 활동이 열리는 다목적 홀로, 199개의 고유한 스테인리스 스틸 패널이 폭발하거나 구겨진 듯 유동적인 형태를 이룬다. 뇌의 복잡한 시냅스와 생명 활동을 눈에 보이는 언어로 옮긴 것이다.
서측 동의 외벽에는 창문 199개가 불규칙하게 박혀 있다. 창들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광은 내부 공간을 파편화하며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인지 능력이 저하된 환자들에게 시각적 자극을 주고, 폐쇄적인 병원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서의 해방감을 전달한다. 게리는 인간의 뇌와 기억을 시각화하고자 했다. 질서 정연한 구획의 진료동과 폭발하듯 얽힌 곡선의 이벤트동이 대비를 이루며, 뇌의 이성적 사고와 복잡한 감정적 활동, 그리고 질병으로 인해 뒤섞인 기억의 상태를 상징한다. 건물 전체가 하나의 뇌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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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에게 시각적 자극과 생동감을 주는 것, 그것이 이 건물의 존재 이유다. 게리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 수상자로, 건물을 하나의 조각품처럼 다루는 해체주의(Deconstructivism)의 선구자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파리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을 세상에 내놓은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 온 것은 하나다. 건축이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도시의 정체성을 바꾸는 예술적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화려한 유흥 뒤에 숨겨진 인간애와 과학적 헌신을 게리의 언어로 읽어보는 경험은, 전문 저널리스트나 디자인 전공자에게는 영감을, 일반 여행자에게는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센터의 슬로건 ‘Keep Memory Alive’, 기억을 지키는 일이 결국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것을 건축으로 직접 경험해보길 권한다.
피오리 디 꼬모(Fiori di Como)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고개가 저절로 위로 향한다. 천장을 가득 채운 색채의 물결, 이름하여 피오리 디 꼬모(Fiori di Como)다.
피오리 디 꼬모는 이탈리아 북부의 코모 호수에서 이름을 따왔다. ‘코모의 꽃’이라는 뜻이다. 현대 유리 공예의 거장 데일 치훌리(Dale Chihuly)가 1998년 벨라지오 호텔 개장에 맞춰 완성한 작품으로, 약 190㎡(57평)의 천장에 손으로 직접 구워낸 2000여 개의 유리 꽃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유리 공예 설치 미술이다.
치훌리는 코모 호수의 수면에 비친 꽃들의 생명력을 라스베이거스 한복판으로 옮겨왔다. 각각의 유리 조각은 시애틀의 스튜디오에서 수천 번의 수작업을 거쳐 탄생했고, 차가운 콘크리트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로비 천장에 살아있는 것처럼 매달려 있다. 로비의 높이와 너비는 천장 아래에 선 관람객이 거대한 연못 아래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건축 투어의 관점에서 이 장소는 세 가지 핵심 가치를 지닌다. 먼저 구조적 경이로움이다. 유리 꽃 한 송이의 무게는 약 13kg에서 22kg에 달한다. 전체 작품의 총 무게는 18t을 넘는다. 이를 지탱하기 위해 천장 내부에는 정교한 강철 프레임이 설계됐다. 육
두 번째는 빛의 변주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조명은 유리 꽃의 굴곡을 따라 매 순간 다른 그림자를 만든다. 자연광이 없는 실내 공간에서 빛을 어떻게 건축적 요소로 활용하는지 관찰하기에 완벽한 장소다. 세 번째는 색채의 레이어링이다. 강렬한 레드, 오렌지부터 차가운 블루와 그린까지, 보색 대비를 활용해 공간에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데일 치훌리의 대형 설치 미술을 입장료 없이 가장 가까이서, 24시간 내내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다. 화려한 색채의 잔상이 가시기 전, 안쪽의 실내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차가운 유리가 발산하는 빛과 살아있는 식물이 뿜어내는 습기가 교차하는 그곳에서 라스베이거스 건축 미학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권효정 여행+ 기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