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경기도 안양이 딱 그렇다.
50여 만 명이 터전으로 삼은 안양은 수도권에서 하루 날 잡아 부담없이 떠날 수 있는 나들이장이다. 서울의 대표 위성도시, 평촌 학원가로만 알고 있던 경기도 안양은 의외로 볼 거 많고 즐길 것이 풍부하다. 극락정토를 뜻하는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유서 깊은 전통사찰이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올가을 한적한 삼성산에서 단풍놀이를 하고 하루 딱 18명에게만 허락된 서울대학교 관악수목원에서 치유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49년 만에 공개된 비밀의 숲
직접 다녀오고 나서 서울대 관악수목원에 ‘길 끝의 수목원’이라는 애칭을 붙여봤다. 말 그대로, 만안구 삼성천을 따라 난 예술공원로 가장 끝에 관악수목원이 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건축가 예술가들의 작품을 품은 길 끝엔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이 자리하고 있다. 예술과 자연의 조합과 조화가 인상 깊게 다가오는 첫 만남이었다. 예술공원로 끝까지 차를 달린다. 안양예술공원 주차장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철문으로 막힌 관악수목원이 나온다. 방문객들은 관악수목원 주차장에 차를 댄다. 주차장 바로 앞에 있는 관리사무소에서 예약 확인을 하고 방문증을 받으면 준비 끝. 이날 안내를 맡은 곽종일 안양시 산림치유지도사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식 이름은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수목원으로 서울대 관악수목원이라고 줄여 부른다. 서울대학교는 현재 수원과 안양에 각각 수목원을 만들어 관리 중이다. 서울대학교가 만든 수목원은 시민들의 여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연구·교육 목적으로 설립했기에 일반 사람들은 접근할 수가 없었다. 1967년 설치된 관악수목원이 일반인에게 공개된 건 2016년 일이다. 안양시와 협의해 진행하는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제한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매월 21일에 다음 달 예약 창이 열리는데, 금방 접수가 끝나버립니다. 경쟁률이 꽤 치열해요.”
곽종일 산림치유지도사가 말했다. 종종 일반 등산객도 보였다. 삼성산(480m) 등 근처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이었다. 수목원이 삼성산 자락에 있다 보니 등산객 통행을 막을 수는 없다. 등산객은 수목원 쪽으로 하산만 가능하다. 벤치에 앉아 쉴 수도 없고 길만 이용할 수 있다.
산림 치유 프로그램은 2시간짜리다. 하루 오전 오후 각각 1팀씩 진행된다. 프로그램 시작 시간은 오전 10시, 오후 2시, 3명 이상 신청할 때만, 오전 오후 각각 9명 이하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가장 처음 멈춘 곳은 ‘리기테다소나무 시험지’였다. 리기다소나무와 테다소나무 교잡에 성공한 현신규 박사가 지역 적응 시험을 위해 1959년 이곳에 리기테다소나무를 심었다. 하늘 높이 솟은 소나무 사이에서 곽종일 산림치유지도사와 인사를 하고 몸 푸는 시간을 가졌다. 옆 사람과 손바닥을 부딪치며 인사를 나누고 나무 지팡이를 이용해 팔·다리·어깨 구석구석 시원하게 스트레칭했다.
이제, 본격적인 산책 시간. 앞사람과 1~2m 거리를 두고 진달래길을 따라 걸었다. 계절이 바뀌는 시점 숲은 약간은 어수선한 풍경이었다. 이번 주 초부터 숲 가꾸기가 시작돼 여기저기 가지치기가 진행 중이다.
약 1100여 종 목본과 초본을 보유한 서울대 관악수목원 총 면적은 1501㏊, 그중 25㏊가 전시 면적으로 수목원 내 산책길만 3㎞다. 워낙 넓어 숲 구석구석을 보는 건 한계가 있다. 프로그램 테마 역시 숲 구경이 아닌 산림 치유다. 제한된 구역 안에서 호흡 명상, 발 마사지, 족욕, 맨발 걷기, 간단한 놀이를 하면서 긴장을 푸는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은 차담 시간이었다. 천변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뜨끈한 수국잎차를 나눠 마시면서 체험을 마무리했다.
수목원 안에는 목공체험장도 있다. 안양시에서 무료로 목공 체험을 진행한다. 산림 치유 프로그램과는 별개로 목공 체험을 신청하면 목공 체험만 할 수 있다. 주제는 다용도 꽂이, 트레이 만들기였다. 장병연 목공예 지도사의 설명을 듣고 차례차례 따라 하다 보면 초보자도 손쉽게 완성할 수 있다. 2시간 동안 진행되고 안양시민이 아니라도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안양에서 서해가 보인다, 삼성산 삼막사
삼막사는 안양을 대표하는 전통사찰이다. 안양에는 모두 4개의 전통사찰(망해암, 염불암, 삼막사, 안양사)이 있는데 비봉산에 있는 망해암만 제외하고 삼성산 자락에 위치한다. 안양 사람들이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삼성산을 소개하면 첫 번째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대기업 삼성과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이다. 삼성산의 삼성은 기업 이름이 아니라 3명의 성인을 가리킨다.
원효·의상·윤필 3명의 성인이 산에 들어 수도를 했다고 삼성산(三聖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막사 역시 이 3명과 관련이 깊다. 삼막사는 통일신라 677년 원효가 창건했다고 알려졌다. 3명의 대사가 막사를 치고 수도를 했다는 의미를 담아 삼막사(三幕寺)라고 했다.
경인교대를 지나 삼막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 올라가면 된다. 삼막사에 도착하면 먼저 뻥 뚫린 풍경이 맞아준다. 온통 바위로 뒤덮인 산 능선에 절이 지어진 모습도 신비롭다. 망해루가 전망 맛집이다. 날이 맑으면 서해까지 보인다. 이날도 시야가 좋은 편이었다. 배곶신도시와 송도까지 보였다. 안양 사람들에게 삼막사는 특히 수능 기도처로 유명하다. 수능 당일과 수능을 100일 앞둔 날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기도를 올린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삼층석탑, 안양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된 감로정 석조와 삼귀자, 경기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남녀근석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았다. 특히 인상적인 건 마애삼존불이다. 바위벽에 치성광여래,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새겼는데 벽을 둘러싸고 자그마한 법당을 지었다. 어른 서너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규모인데, 삼존불이 새겨진 벽을 그대로 살린 구조가 독특하다.
절 구경을 끝내고 다시 온 길을 걸어 내려와도 되고 국기봉으로 가거나 안양예술공원까지 갈 수도 있다. 삼막사에서 국기봉까지는 500m 거리인데,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 동네 뒷산을 생각하면 안 된다. 관악산 못지않게 길이 가파른 편이다. 삼막사부터 안양예술공원까지(2.1㎞) 가는 산길도 잘 닦여 있다.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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