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부족하면 하루종일 피곤에 시달린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피곤에 시달린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머릿속이 헝클어진 듯 복잡한 느낌’일 것이다.
이는 생각이 마구잡이로 떠오르며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잠을 충분히 잘 수 없을 경우, ‘잊고 싶은 것’을 처리하는 뇌 영역의 기능이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잠 부족, 기억 저장&연상 문제 유발
누구나 살아가면서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 금방 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때때로 그런 기억이 떠오르면 기분이 나빠진다.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 심리학과의 마커스 해링턴 박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이런 기억들은 살아가면서 잠깐씩 나타나는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우울이나 불안 장애, PTSD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들은 훨씬 자주, 보다 생생하게 떠올리게 된다.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저널(PNAS)에 지난달 31일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할 경우 뇌의 ‘기억 처리 및 회복’ 기능이 떨어진다. 이는 저장된 기억을 잘 떠올리지 못하거나, 해당 기억을 부정적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 과정은 렘(REM) 수면과 깊은 연관이 있다. 흔히 렘 수면은 ‘꿈을 꾸는 단계’, 그리고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며 기억을 처리하는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함으로써 렘 수면이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기억을 처리하고 회복하는 기능에 장애가 생긴다는 것이다.
피곤하면 ‘나쁜 기억’ 차단 어려워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 연구팀은 85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fMRI(기능적 MRI)를 사용해 뇌 이미지 촬영을 실시했다. 참가자 절반은 fMRI 촬영 전날 수면 실험실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으며, 나머지 절반은 전날 밤새 깨어 있었다.
fMRI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참가자들은 각기 ‘원치 않는 기억’을 떠올린 다음, 이를 억제하려 시도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참가자들의 경우, 생각과 행동, 감정을 제어하는 뇌 영역에서 활발한 반응을 보였으며, 기억을 검색하는 뇌 영역 ‘해마’의 활성화가 줄어들었다. 반면 밤새 깨어 있었던 참가자들은 생각, 행동, 감정을 제어하는 뇌 영역의 반응이 비교적 둔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fMRI 촬영 결과를 토대로, 충분한 렘 수면이 전두엽의 기억 제어 기능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억을 올바르게 저장하는 능력은 물론, 원치 않은 기억이 떠오를 때 이를 의식적으로 차단하는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충분한 휴식(렘 수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면 부족, 정신건강 문제와 연관
수면 부족이 정신건강 문제를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할 경우 뇌의 감정 조절 기능이 저하돼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증가한다.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다시 그날 밤까지 영향을 미치며, 또 다시 숙면을 취하지 못해 뇌 기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우울증을 앓는 경우 수면 부족이 동반되기 쉬우며, 이로 인해 증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PTSD 또한 수면 문제를 동반하는 경우가 흔하며, 기억 회복 및 정서적 안정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을 자는 동안 뇌는 자연스럽게 노폐물과 독성 물질 등을 청소하게 되는데, 이 작용이 충분하지 못하면 잔여물이 남아 계속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해링턴 박사는 “기억은 우리가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데 있어 정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며 “즉, 기억을 원활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증상은 수면 부족과 감정 조절 장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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