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정지? 과징금 내면 돼”…처벌 비웃는 ‘건설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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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경기도 파주시 초롱꽃마을 3단지(파주운정 A34) 지하 주차장에 보강 공사를 위한 천막이 설치돼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조사 결과 해당 아파트는 지하주차장 기둥 331개 중 12개에서 철근이 부족하거나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뉴스1
2일 경기도 파주시 초롱꽃마을 3단지(파주운정 A34) 지하 주차장에 보강 공사를 위한 천막이 설치돼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조사 결과 해당 아파트는 지하주차장 기둥 331개 중 12개에서 철근이 부족하거나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뉴스1

‘철근 누락’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15개 단지 중 13개 단지 사업을 담당한 시공·감리·설계 업체는 벌점을 받은 이력이 있는데도 공공발주 사업을 버젓이 따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배경은 행정소송을 통해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벌금 처분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제도적 허점 때문이다.

벌점 받아도 ‘행정소송’ 내고 600억대 수주

4일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건설사업자·건설사업관리자 벌점부과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LH는 건설사업자 등에게 벌점 279점을 부과했다. 이중 A업체는 2018년 9월 벌점을 받은 이후에도 30건, 약 661억원 규모의 공사를 따냈다. B업체는 2019년 9월 벌점을 받고도 29건, 약 640억원의 공사를 수주했다.

LH는 입찰 시 벌점을 받은 업체에는 감점하는 등 불이익을 주는데,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행정소송을 통해 벌점 효력을 정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점을 부과받은 업체들은 처분 효력 집행정지 소송을 내고, 법원에서 인용이 되면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걸어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벌점 처분 효력이 정지된다. 이렇게 되면 법적으로 ‘벌점 없는’ 업체가 되는 셈이다. 최종 법적 판단은 적어도 4~5년이 걸리므로 이 기간에는 수주 활동에 제약받지 않는다.

허 의원은 “벌점 받은 업체들이 벌점 부과 취소 소송을 제기한 33건 중 현재 진행 중인 4건을 제외하고 29건 모두 (업체들이) 패소했다”며 “소송 제도를 악용해 사익을 추구한 것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LH 건설사업관리자 벌점 부과 후 수주 현황 /사진=허영 의원실
LH 건설사업관리자 벌점 부과 후 수주 현황 /사진=허영 의원실

영업정지와 같은 강력한 행정처분도 사정은 비슷하다.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를 낸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은 지난해 4월 서울시로부터 부실시공과 하수급 관리 위반 등 2건에 대해 각각 8개월씩 총 1년4개월 영업정지 처분받았다. 현산은 부실시공 8개월 영업정지 처분에 대해 곧바로 이 명령의 효력을 멈춰달라고 법원에 ‘영업정지 처분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여 현재 영업정지 처분이 정지된 상태이며, 이어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 사이 현산은 지난해 8월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시행하는 공공재개발 1호 사업지인 동대문 용두1구역 시공권을 수주했다. 이 사업은 6600억원 규모다.

영업정지→과징금 대체도 가능…”법 없는 게 아니라 실행 안 되는 게 문제”

김정재 국민의힘 국민안전 TF 위원장(가운데)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아파트 무량판 부실공사 진상규명 및 국민안전 TF'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김정재 국민의힘 국민안전 TF 위원장(가운데)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아파트 무량판 부실공사 진상규명 및 국민안전 TF’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영업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산은 광주 학동 사고 관련 하수급 관리 위반으로 영업정지 8개월 처분에 대해 과징금(약 4억원)으로 대체했다.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은 ‘처분 대상자가 요청하는 경우 영업정지를 과징금 처분으로 갈음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5월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과징금을 기업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유권해석 법령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행정기관 처분에 따라 법률 또는 권리관계를 다투는 행정소송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더라도 정부가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 척결’을 공언하고 나선 만큼 몇 년이 걸리든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그동안 사람이 사망한 수많은 사고에도 등록말소 등 강력한 행정처분을 받은 기업은 없다”며 “법과 제도가 없는 게 아니라 제대로 실행된 적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행정소송 동안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지고, 대형 로펌을 고용하는 대기업 건설사를 공무원이 법적 논리로 이기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행정처분이 제대로 실행되는 실질적인 사례를 정부가 책임지고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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