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전세사기 대책]”사기 입증은 피해자가”…초기 대응 부재로 피해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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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북구의 한 원룸 건물에 거주 중인 홍미영 씨(가명·26)는 깡통전세 세입자이자 전세사기 의심 피해자다. 이 건물에는 홍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세입자 20여명이 거주 중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 몇몇이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찾아 피해를 호소했지만, 당장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임대인의 기망행위’를 입증하는데 시간이 걸려서다. 그러는 사이 건물주는 돌연 이혼을 했고, 파산신청까지 했다.

정부의 전세사기 초기 대응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사건 발생이후로 집중되면서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계약 특성상 만료 시점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임대인의 기망행위를 입증해야 하는 까닭에 초기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나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는 좀처럼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초기 대응 부재로 인해 가해자들이 재산 은닉이나 도주 등을 도모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집단 피해 발생해야만 대응 나서는 정부

최근 현장에서 만난 전세사기 피해가 의심되는 세입자들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받기 위해선 임대인의 기망행위를 증명하는 자료를 구비해야 하는데, 개인이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변호사 선임을 통해 전세사기 피해를 입증하려 해도 “방법은 계좌 추적인데 개인이 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만 듣고 발길을 돌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홍씨는 “현재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과 대응은 집단 피해가 발생해야만 움직이고 있다”며 “변호사조차 피해자가 더 발생하면 그때 집단 대응을 통해 전세사기를 주장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피해가 의심되면 초동수사를 통해 피의자의 신변과 재산 현황 등을 확보해야 하는데, 정부나 경찰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없다”며 “피해자의 호소가 묻히는 사이 전세사기를 일으킨 임대인들은 재산을 은닉하고 잠적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초기 수사 부재로 인해 피해 규모가 커진 사례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빌라 283채를 매수한 다음 32억 원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화곡동 빌라왕’ 사건이 대표적이다. 주범으로 지목된 강씨(55)는 2019년 8월 사기혐의로 고소됐다. 그러나 경찰이 강씨를 검찰에 송치한 건 1년이나 지나서였고, 그로부터 2년 4개월이 더 경과해서야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가 지지부진하면서 강씨로부터 거액의 뒷돈을 받은 공범 조모씨의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는 공소시효마저 지났다.

최근 90여명의 전세사기 의심 피해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 오피스텔 사건도 초기 대응이 아쉬웠다. 이곳에 거주하는 일부 전세계약자들 중 몇몇이 수개월 전부터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 등에 신고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역시 임대인의 기망행위를 증명하지 못해서다. 그러는 사이 수명이었던 피해자는 수십명이 넘어섰고, 그제서야 정부는 관심을 갖고 조사에 나섰다.

부산에서는 빌라와 오피스텔 90호실 가량을 소유하고 있는 부부가 최근 전세 계약만료를 앞두고 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적했다. 이곳 역시 올해 초부터 일부 피해자들이 전사기 피해 의심을 주장했지만, 수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지금에서야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는 전세사기 대응 및 수사를 위해 전담수사팀을 꾸려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한 현실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시도청에 구성된 전세사기전담수사팀 인력은 1681명이다. 이들은 제보 등을 통해 부동산 불법 중개행위에 대한 현장 수사를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임대인의 기망행위를 어느 정도 입증해야 경찰로 사건을 이첩시켜 가해자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가능하다.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의 제보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전세사기에 대한 초기 대응이 쉽지 않으면서 적발 건수 및 처벌 성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이 시작된 지난 7월25일부터 지난달 26일까지 전세사기 접수 피해자는 1705명, 피해금액 3099억원이다. 이 중 기소 전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한 금액은 5억8000만원(0.19%) 뿐이었다. 총 검거된 피의자 2188명 중 구속된 경우는 209명에 머무른다.

“전세사기 입증 방법 손질해야”

전세사기 의심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입증 방법을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기를 목적으로 한 의도적인 계약 또는 세입자에게 허위 사실 전달, 진실 은폐 등의 기망행위를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전세사기로 법정에 선 가해자 대부분은 주택시장 침체에 따른 결과라는 주장을 펼치며 법망을 피하려하고 있다.

화곡동 빌라왕 사건의 피의자도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주범으로 지목된 강씨 측은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힐 의사가 없었으며, 민사적 책임이 있음은 인정하나 기망의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강씨에게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주택 매수를 제안한 조씨 측은 공모관계를 부인했으며, 김씨 측은 “강씨가 보증금 반환 의사,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전세사기 의심 피해자 김미연씨(가명·38)는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가 있는데, 왜 고의성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 할 수가 없다”고 성토했다. 그는 “음주운전 사고로 따지면 사고를 내기위해 술을 먹고 운전했는지, 어쩌다 보니 술을 먹고 사고를 낸 것인지를 따지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법이 이러니 집을 가지고 투기하는 꾼들이 득세하고, 전세사기와 같은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전세사기로 실형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며 “처음 계약 체결 때부터 보증금을 부당하게 취할 고의가 입증돼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입증이 어렵다”고 전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객관적으로 보증금을 돌려주거나 이자를 갚을 능력이 안 되면서 무리하게 갭 투자한 경우 가끔 사기죄가 인정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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