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27.4%’ 일군 엘 불리 셰프, 한식을 묻다 “김치는 왜 빨개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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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250만 명이 페란의 요리를 맛보고 싶어 했다. 이제 스페인은 “그와 엘 불리에 큰 빚을 졌다”고 말한다. 그의 미식 작업은, 기존의 미식 레시피와 관행을 되풀이하는 게 아니었다.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페란 아드리아 엘 불리 파운데이션 창립자] 1962년생. 1984년 엘 불리에 합류, 1987년 총괄 셰프가 됐다. 1997년 미슐랭 3스타를 받았다.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W50B)에서 다섯 차례 1위에 올랐다. 그가 레스토랑을 운영할 당시 매년 250만 명이 예약 신청했고, 이중 8천 명만 식사할 수 있었을 만큼 명성이 높았다. 2011년 업장 문을 닫고 교육·연구 기관인 ‘엘 불리 파운데이션’을 설립했다.](https://www.fortunekorea.co.kr/news/photo/202512/51130_44901_1931.png)
페란 아드리아는 10월 말 전남 장성의 한 암자를 찾았다. 국립공원의 산 아래 안내소에서 샛길로 15분여 올라가야 나오는 암자 ‘천진암’에는 ‘사찰음식의 대가’로 불리는 정관 스님이 있다. 페란은 최정윤 난로학원 의장, 박정현 아토믹스 셰프 등 이날 일행인 셰프 10여 명과 함께 공양했다.
암자 한편엔 저마다 크기가 다른 장독 수십 개가 모여 있었다. 공양을 마치고 나온 페란은 장독대로 갔다. 그는 장독의 뚜껑을 하나씩 열고, 색을 본 뒤, 냄새를 맡았다.
비슷한 시각, 잡식을 택한 기자 일행은 산 아래에서 ‘산채 정식’을 먹었다. 구운 가자미, 해물파전, 각종 나물들이 상에 올랐다. 반주를 못한 아쉬움은 귀갓길에 달랬다. 인근 역인 정읍역에서 지역 쌀로 담근 탁주를 팔고 있었다. 시음 잔을 넘기자 와인 같은 달큰한 맛이 감돌았다.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최정윤 의장은 ‘한식 산업화’를 말했다. 최 의장은 고기구이(‘코리안 바비큐’)에 주목했다. 버리는 부위가 없고, 고기에 채소를 곁들어 먹는다. 손님에게 생고기 상태를 보여주고, 그 앞에서 굽는 ‘연출’도 한국식 고기구이의 특징이라고 최 의장은 말했다. 이런 특징들을 ‘한국의 미식’으로 브랜딩한다면, ‘한식의 산업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산업화란 한식 레스토랑 매출을 늘리는 것 이상을 뜻한다. 한식 식재료의 인지도와 단가를 높여서 농·축·어업을 키우고, 한식을 경험하게 하는 호텔 및 관광업도 함께 성장시킨다.
사실 이런 구상은 페란에게서 나왔다. 2007년 최 의장은 엘 불리 레스토랑, 그리고 페란이 만든 연구 재단인 ‘알리시아 재단’으로 가 배웠다. 페란은 최 의장을 “김치”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스페인 미식을 글로벌 미식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단 평가를 받는다. 그가 이끈 레스토랑 ‘엘 불리’는 매년 전 세계 250만 명이 예약 신청하고, 이 중 8천 명만 그의 요리를 맛봤다. 그는 미식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레시피, 식재료를 발굴, ‘미식 경제 생태계’를 만들었다. 2023년 스페인 경제(총부가가치)에서 미식 생태계는 27.4%를 차지한다. 현지의 유력 경제지 ‘싱코 디아스(Cinco Dias)’는 “스페인은 페란 아드리아와 엘 불리 현상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논평했다.
그의 작업에선 연구의 비중이 컸다. 매년 6개월, 업장 문을 닫고 새로운 요리를 연구했다. 2011년엔 아예 연구 재단을 세우고 식재료와 영양과학 등 연구에 집중했다.
그래서 페란에게 물었다. 장황했던 질문은 이랬다.
“1년 전 최 의장과 만나면서 한국에서 ‘미식(gastronomy)’도 경제에서 큰 비중을 갖는 ‘산업’으로 커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한식을 전통 ‘요리’로 생각하지, 연구해야 할 대상으론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식 연구’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페란 아드리아는 퀭한 눈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이 세계의 공통적인 문제는, 용어에 대한 합의가 없다는 겁니다.” 관계자는 그가 한국에 온 뒤 2시간밖에 못 잤다고 귀띔했다. 그의 답엔 그 이상의 피로감이 녹아 있었다.
“당신은 미식 산업을 묻고 있지만, 사실 ‘식(음식, alimentation)’ 산업을 묻고 있어요. 먹는 것은 생존 행위예요. 미식은 쾌락을 위한 행위이고요. 스페인 경제에서 미식의 비중은 약 5%에 불과해요. 전체 ‘식’이 27.4%이죠.”
그는 되물었다. “당신이 말하는 요리는 무엇입니까?”
“인류는 언제나 요리를 연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어떤 활동도 요리만큼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예를 들어 요리가 없다면 농업, 축산업은 존재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대기업이 하는 (요리) 연구와 고급 미식 레스토랑이 하는 연구는 완전히 다른 세계예요.”
말문이 막혔다. 한식 산업화의 방법은커녕, 무엇을 ‘한식’이라고 말해야 할지 까마득해졌다.
멍하니 답을 듣는 기자에게 그는 말했다. “객관적 기준이 없으면 그저 ‘블라블라, 블라블라’ 떠드는 것일 뿐이에요.” 그는 손을 흔들며 반복했다. “블라블라, 블라블라.”
스페인의 27.4%

사흘 뒤인 29일, 그는 서울 성북동 삼청각을 찾았다. 농림축산식품부, 한식진흥원에서 주최한 ‘2025 한식 컨퍼런스’가 이곳에서 열렸다. 페란 외에도 알리시아 재단의 총괄이사 토니 마사네스, ‘권숙수’ 권우중 셰프,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등 유명 셰프와 연구자들이 연단에 올랐다. 또 국내외 셰프와 연구자, 관계자 등 400여 명이 객석을 채웠다.
하루 종일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페란은 주인공에 가까웠다. 네 개 세션 중 세 개에 참여했다. 그는 화이트보드를 갖고 와 자신의 철학을 2시간여에 걸쳐 설명했다.
그는 “경제적 관점”으로 말문을 여는 것을 즐겼다. 그가 정부와 대학, 대중을 대할 때 쓰는 수사였다.
“’미식은 아름답고 멋지니까 지원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식(食)은 GDP의 27.4%를 차지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비로소 귀를 기울입니다.”
스페인의 27.4%. 한국에서 제조업의 위상(28.9%)에 버금간다.
이 수치는 KPMG와 스페인 왕립 미식학회에서 올해 1월 낸 보고서 ‘스페인 미식: 국가 핵심산업의 경제적 영향과 트렌드’에서 집계해 내놓은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의 식산업은 2023년 3750억 유로(약 636조 원)의 부가가치를 만들었고, 약 7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전체 일자리의 5분의 2에 해당한다.
보고서는 식산업을 ‘미식 부문’이라고 표현했다. 레스토랑이 속한 식음료업도 미식 부문의 하위 산업으로 봤다. 식음료업과 함께 농·축산·어업, 식음료 수출업, 그리고 호텔업을 묶어 “미식의 경제 생태계”로 식산업을 정의했다.
스페인의 식산업 성장은 식음료 수출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스페인 식음료 수출액은 2013년 350억 유로에서 2023년 660억 유로로 88% 늘었다. 이는 전체 수출의 17.4%에 해당하는 액수다.
양과 질이 함께 늘었다. 수출 단가는 같은 기간 ㎏당 1.2유로에서 2.0유로로 67% 올랐다. 2023년 놓고 인접국과 비교해도 스페인 식음료 제품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았다. 유럽 평균은 1.48유로였고, 이탈리아는 2.38유로, 유럽 최대 농식품 수출국인 프랑스는 1.30유로였다.
페란은 “(이런 수치를 바탕으로) 스페인 정부의 장관, 그리고 카탈루냐 지방정부는 처음으로 (미식이) 경제의 동력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페루도 국가 경제에서 식산업의 영향력이 큰 나라다. 페루 사람들이 ‘페루 사람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로 ‘요리·미식’을 첫째로 꼽았을 정도(45%, 2020년 입소스 여론조사 결과). 페란은 “그곳의 어린 아이들은 축구 선수가 아니라, 요리사가 되고 싶어 했다”며 놀라워했다.
페루 수도 리마에 자신의 레스토랑 ‘아스트리드&가스톤’을 운영하던 가스톤 아쿠리오는 2002년부터 페루 전역을 돌며 소농과 요리사들을 만났다. 그 결과 지역의 식재료, 그리고 그 식재료를 활용한 레시피를 발굴했다. 그 결과 “사줄 사람이 없어 밭에서 썩고 있던” 페루의 전통 곡물인 ‘퀴노아’를 영양면에서 완벽한 수퍼푸드로 브랜딩했다. 2009년 직접 미식 박람회(‘미스투라’)를 만들어 그가 발굴한 것들을 소개하고, 미식 레스토랑에서 이를 활용한 요리를 개발했다.
이렇게 퀴노아 외에도 페루 토종 감자, 코코아 등을 프리미엄 품종으로 탈바꿈시켰다.
그의 작업이 성과를 낼 무렵부터 글로벌 미식 가이드에도 페루 레스토랑이 이름을 올렸다. 2013년 ‘센트럴’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W50B)에서 50위로 처음 리스트에 진입했다. 10년 뒤인 2023년엔 1위에 올랐다. 이밖에 페루 레스토랑 네 곳이 2025년 리스트에 올랐다.
미주개발은행(IDB)는 2022년 낸 보고서 ‘페루 미식 산업의 혁신 분석’에서 이 과정을 “페루의 미식 혁명”이라고 불렀다.
보고서에서 IDB는 ‘미식 산업’을 숙박과 식음료업만 포괄하는 것으로 좁게 정의했다. 그리고 2000년부터 2019년까지 미식 산업 연평균 성장률(5.1%)이 전체 경제(4.9%)를 상회했다고 분석했다.
스페인과 페루에서 보듯, 식산업은 과실이 크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숫자는 노력의 결과일 뿐, 목표가 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비로소 귀를 기울이도록 하기 위한” 수사다. 페란은 그가 40여 년간 엘 불리와 이후에 만든 재단에서 그렇게 했듯, 미식 연구를 중심에 두고 있었다. 미식이 있고 식산업이 있었다. 한식도 그랬다.
Korean Cuisine

프랑스 작곡가 브루노 만토바니는 2007년 엘 불리에서 35가지 요리를 맛봤다. 이후 그는 요리를 떠올리며 곡을 썼다고 한다.
“짠 것과 단것, 해산물과 육산물, 야채와 고기가 결합하는 방식은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첫 순간부터 환상이 존재했다. 처음에 나온 올리브 스페리코(구 형태의 요리)는 시각적으로 (‘올리브’라고) 파악 가능한 대상과 그것에 대한 뜻밖의 ‘해석’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사실상 그것의 정체는 시각적으로 재구성된 올리브였다. 녹색의 얇은 젤라틴 막 속에 압착 올리브 즙을 넣은 것이었다. 형태와 맛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텍스처는 놀랍도록 새로웠다.” (장 폴 주아리 지음, 『엘 불리의 철학자』(2014), 153쪽)
페란은 인터뷰에서도, 강연에서도 지식의 원리, 그러니까 ‘어떻게 정보에서 지식을 추려내고, 지식을 구체화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그의 설명에는 빈 공간이 있는 듯했다. 지식의 원리를 장황하게 설명하고는, 곧바로 미식 산업화에 필요한 교육을 말했다. 정작 그 사이, ‘미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비어 있었다. 그가 “미식과 식은 다르다”며 엄밀하게 구분하려 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주아리가 페란의 작업을 분석한 책 『엘 불리의 철학자』에 단서가 있었다. 책에서 그는 15년간 엘 불리에서 식사하면서 페란의 작업을 지켜봤다고 소개했다.
장 폴 주아리는 기존의 미식이 ‘주문’과 ‘레시피’에 예속된 것이라면, 페란의 작업은 ‘창조’에 가깝다고 봤다.
“흔히 손님은 왕이라고 한다. 레스토랑에서 무엇을 어떤 순서로 먹을지 결정하는 것은 손님이라는 뜻이다. 손님이 ‘주문’한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고급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러시아식 서빙이 일반화되면서 그렇게 됐다. 이제 가스트로노미는 주문과 레시피, 손님들의 입맛, 특정한 식사 순서 등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속하고 발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요리가 독창적인 작품이 되려면 그 요리에 매료된 손님들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그대를 충족시키려는 의도를 배제해야 한다. (…) 페란 아드리아는 최초로 이런 모순을 극복하고 이 기준들을 만족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그가 지켜본 페란의 ‘창조적’ 미식 연구를 리뷰했다. “세계 각지의 조리법, 재료, 문화적 관습을 모은” 다음 “요리의 기존 개념을 보존하는 동시에 넘어선다, 때로 해체한다.”
즉, 페란에게 미식 연구란 곧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과정 자체다. ‘미식은 이래야 한다’는 식으로 기존의 주문과 레시피를 따르는 게 미식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강연에서 페란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이런 역설을 설명했다. “나는 아스파라거스를 먹을 때 아스파라거스 맛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누벨퀴진(1970년대 프랑스에 나온 미식 사조)의 맹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앞서 프랑스의 작곡가가 먹었던 페란의 ‘올리브 스페리코’가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좋은 예다. ‘올리브색의 구체’라는 올리브의 개념만 남기고, 새로운 재료를 채워 넣어 요리를 만든 것.
페란은 한국에서도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북돋았다. 오랜 역사와 풍부한 식재료, 또 충분한 경제력을 이유로 꼽았다.
“한국에는 좋은 식재료(productos)가 정말 많습니다. 채소, 해산물, 고기 모두 좋습니다. 이건 엄청난 강점이에요. 좋은 재료가 없다면, 전부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거든요. 한국에는 잠재력이 있어요.”
그는 연구, 즉 해체와 재구성의 연구를 말했다. 빨간 고춧가루를 고집하는 김치를 예로 들었다.
“제가 어떤 셰프에게 ‘왜 김치는 항상 빨간 고춧가루로만 만드나요?’라고 물었는데, 그는 ‘원래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항상’은 아니었습니다. 고추는 한참 뒤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고추는 한국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의 것입니다. 전통은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진실을 왜곡하는 이유가 돼선 안 되겠죠.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지식은 기존 지식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스페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흑색 화약을 발명하기 전에, 우선 지금 있는 화약을 알아야 한다.’”
또 페란은 이런 질문을 던져 보라고 제안했다.
“지금까지 가공되지 않는 식재료가 있을까요? 전 세계에 없는, 한국에만 있는 식재료가 어떤 것일까요? 또 한국에만 있는 기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는 한식 용어부터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오면, 꼭 ‘Traditional Korean Food’가 아니라 ‘Korean Cuisine’이라는 말을 쓰도록 하세요. 그래야 정체성이 생깁니다.”
페란의 현재, 한식의 미래

최정윤 “18년 전 엘 불리와 알리시아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스페인이 어떻게 전 세계 최고에 오르게 됐는지 봤습니다. 사실 궁금해서 갔어요. 제가 처음에 요리 배울 때만 해도 프랑스 요리, 이탈리아 요리만 알았지 스페인은 잘 몰랐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성장했을까?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자. 어떻게 스페인이 전략을 가지고 하나하나 해 나가는지를. 특히 연구와 교육에서요.”
페란 아드리아 “잠시만요. 그렇지 않습니다. 스페인은 전략이 없었습니다. 정부 지원은 거의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저희는 전략은 없고 재능이 있었습니다. 페란 아드리아, 안도니 루이스 아두리스(‘무가리츠’ 오너 셰프), 그리고 호안 로카(‘엘 세예 데 칸 로카’ 오너 셰프). (축구로 치면) 메시와 네이마르 같은 선수들이었죠.”
_10월 29일 ‘2025 한식 컨퍼런스’ 대담에서
다시 천진암에서의 인터뷰. 용어 혼란을 뒤로 하고, ‘스페인 미식의 브랜딩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물었다. 정부의 전략, 제도적 지원을 예상했다. 이번에도 페란의 답은 예상을 비껴갔다.
“짧게요? 이건 제 인생 30년의 이야기인데요. 아주 복잡한 주제입니다,” 그는 시계를 봤다. “무엇보다 재능이 필요합니다.”
스페인에는 자질을 갖춘 이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돈이 많은 나라는 많습니다. 하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비범한 재능을 지닌 7, 8명의 인물이 없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아요.”
재능을 전제로, 페란은 교육을 말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재능 자체는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재능이 발휘될 환경과 조건은 설계할 수 있습니다.”
페란은 교육을 두 가지로 말했다. 하나는 조리법을 익히는 수준이 아니라, 미식 연구가 가능한 기관이어야 한다는 것. 그는 김치 담그는 법을 익히는 것과 “세계 최고의 김치를 만드는 것”을 구분했다.
“저는 김치를 담글 줄 모릅니다. 하지만 레시피를 받아서 나흘이면 담글 수 있게 될 겁니다. 물론 오랜 기간 해온 사람들만큼은 못하겠죠. 요리는 실습이에요. 그래서 일견 보기에 쉬워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은 ‘머리’입니다. 생각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요리를 잘할 수 없어요.”
다른 하나로 그는 학제 교육을 말했다. 생명과학이나 경영학 같은 유관 학문과 함께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스페인에서도 레스토랑 관련 경영 교육이 없다”고 꼬집었다.
“스페인에서, 레스토랑 10곳 중 6곳은 5년 이상 지속되지 못합니다. 이탈리아도 같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예산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비즈니스를 전혀 모릅니다.”
페란은 이 두 가지 필요를 요리학교에서 충족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미식 연구를 수행할 수 있고, 학제 교육이 가능한 대학을 주문했다. 2011년 설립된 스페인 최초의 4년제 미식 대학인 바스크 컬리너리 센터(BCC)를 예로 들었다. 그곳의 교육은 50%가 기업 경영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BCC와 함께, 그가 참여해 2024년 개교한 마드리드 컬리너리 캠퍼스(MACC), 스페인 동부에 2014년 설립된 가스마(GASMA)가 미식 특화 대학으로 꼽힌다.
그는 “미국에는 대학이 없습니다. CIA는 ‘대학’이 아니라 요리학교”라면서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에 이런 대학이 없다면, 결코 세계적인 미식 국가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페란의 “김치”였던 최정윤 의장은 2023년 한국에서 교육 인프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해 한식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비영리 사단법인인 ‘난로학원’을 발족했다. 현재 난로학원엔 한식 셰프들은 물론, IT, 미디어, 금융 다양한 업계 전문가 4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최 의장은 이들과 함께 글로벌 한식 컨퍼런스 ‘난로 인사이트’, 연구∙교육 프로그램 ‘난로 아카데미’ 등을 시작했다.
또 페란이 다녀간 직후인 지난 10월 30일엔 한식 인재 장학 프로그램인 ‘난로 넥스트’를 발족했다. 1년간 한미 양국에서 20명을 선발, 체계적인 교육과 멘토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사업 기획과 대상자 선발 등 실무를 맡는 자문위원회에는 김아린 비마이게스트 대표, 한식 레스토랑 ‘소울’의 김희은 셰프, 중식 레스토랑 ‘티엔미미’의 정지선 셰프 등이 참여했다.
프로그램 고문단으로는 ‘한식계 대모’ 조희숙 한식공간 대표,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스님, 글로벌 사모펀드 ‘TPG 한국’의 이상훈 대표, NICA(난로 국제 셰프 자문단)로 활동 중인 박정현 아토믹스 셰프, W50B 2023 1위인 페루 센트랄의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즈 셰프, W50B 2024 1위인 스페인 디스프루타르의 오리올 카스트로 셰프가 합류했다.
최 의장은 페란과의 대담에서 “연구는 당연히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이 연구를 실행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구를 실행하는 일이란 교육이었다.
“실행하는 일의 가장 핵심은 다음 세대를 지원하고 어떻게 다음 세대들이 더 앞으로 꿈을 가
지고 나갈 수 있도록 만들까예요. 여러 가지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페란은 지금도 현역이다. 그는 2011년 엘 불리 재단을 만들면서 “20년 프로젝트”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매우 긴 여정을 걷고 있다”며 “비범한 결과는 비범한 시간 없이는 얻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제야 스페인 정부와 “전략”을 논의한다고 말했다.
“가끔 사람들은 ‘이 레스토랑은 8년 만에 성공했다!’라고 말하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그건 과정일 뿐이에요. 진짜 성취는 훨씬 긴 시간 속에서 쌓이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