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딜은 오염됐다” 파라마운트, 러브콜 뒤 적대적 M&A 돌입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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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https://www.fortunekorea.co.kr/news/photo/202512/50940_44701_949.jpg)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Paramount Skydance)의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 공개매수 제안은 몇 달간 이어진 삐걱거리는 구애, 급변하는 미디어 지형, 스트리밍 공룡 넷플릭스와 정면으로 맞붙게 만든 초대형 인수전 끝에서 나왔다.
파라마운트가 1080억 달러 규모(지분가치 779억 달러)의 적대적 인수를 발표한 직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공개매수 신고서를 보자. 파라마운트가 워너브라더스를 여러 차례 설득하려 시도했지만 번번이 문이 닫혔던 과정이 상세히 드러난다. 넷플릭스와 WBD는 12월 5일(현지 시간) 지분가치 720억 달러, 총 830억 달러 수준의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신고서에 따르면, 파라마운트 CEO 데이비드 엘리슨은 넷플릭스 딜 발표 전날인 12월 4일 이미 승부가 기울고 있다는 조짐을 감지하고 WBD CEO 데이비드 재슬래브에게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앞서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한 내용이기도 하다. 엘리슨은 이렇게 썼다.
“오늘 많이 정신 없으실 것 같아 짧게 문자 드립니다. 다음에 이사회에서 논의하실 때, 저희가 이전에 말씀 주신 모든 쟁점을 반영한 새 패키지를 제안드리고자 한다는 점을 꼭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어 그는 CEO 개인을 향한 ‘러브콜’도 덧붙였다. “지난 24시간 동안 여러 잡음이 있었지만, 저는 당신과 회사에 대해 존경과 애정밖에 없습니다. 이 상징적인 자산들의 주인이자 당신의 파트너가 되는 건 제 인생 최고의 영광일 겁니다. 저와 제 아버지는 당신과 저녁을 함께 했던 그 사람들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항상 파트너에게 충실하고, 약속을 지켜온 사람들입니다. 함께 일할 기회를 꼭 얻게 되길 바랍니다.”
그날 늦게 파라마운트는 WBD 이사회에 보낸 서한에서 이번 매각 절차가 “오염된(tainted)” 과정이었다고 정면 비판했다.
파라마운트는 투자자들에게도 같은 불만을 쏟아냈다. “워너브라더스 이사회가 진행했다고 주장하는 전체 ‘매각 프로세스’ 기간 동안, 워너 측은 거래 계약서에 단 한 번도 수정 의견을 보내지 않았다. 계약 문안을 한 페이지씩 검토하는 회의를 한 번도 잡지 않았으며, 파라마운트나 그 자문단과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협상도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
2023~2024년 사이, 파라마운트의 전신인 파라마운트 글로벌과 WBD는 여러 차례 통합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협상은 결론 없이 끝났다. 파라마운트 글로벌이 스카이댄스와의 합병을 우선 추진하면서다. 이 딜이 2025년 8월 마무리된 뒤, 새 경영진은 다시 워너와의 결합을 꺼내 들었다. 대형 스트리밍 플랫폼과 빅테크에 맞설 ‘스케일’을 갖추려면 양사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긴박감은 2025년 6월 더 커졌다. WBD가 회사를 둘로 쪼개겠다는 계획을 공개하며 2026년 중반 완료를 목표로 제시한 것이다. WBD는 가을까지도 이 전략을 고수했다. 파라마운트는 이 분할이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이후 전체 회사를 통째로 인수할 수 있는 기회를 크게 줄일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분할이 현실화되기 전 ‘원샷’으로 회사를 통째로 사들일 수 있는 짧은 창을 보고 서둘러 움직였다는 게 SEC 신고서의 설명이다.
SEC 문건에 따르면 2025년 9월 초, 파라마운트가 인수 제안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WBD 주가는 급등했다. 루머 직전 12.54달러에 머물던 주가는, 파라마운트가 1차 제안(현금+주식 혼합, 주당 19달러)을 던진 다음날인 9월 15일 19.46달러까지 뛰었다. 뉴욕타임스는 10월 이 ‘비밀 입찰전’을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WBD는 이 제안을 며칠 만에 거절했다. 회사 가치가 저평가됐고, 기존 분할 계획이 주주들에게 더 큰 가치를 줄 것이라는 이유였다. 파라마운트는 9월 30일 현금 비중을 확 늘린 주당 22달러 제안으로 응수했다.
20억 달러 규모의 위약금, 경쟁당국을 상대로 끝까지 소송을 감수하겠다는 약속, 재슬래브를 통합 회사의 공동 CEO 겸 공동 이사회 의장으로 앉히겠다는 카드까지 함께 내밀었다.
하지만 WBD는 이 제안도 거부했다. 여전히 “불충분하다”고 평가했고, 분할 계획이 더 낫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대목에서 파라마운트 측 불신은 더 깊어졌다. 이사회가 양사 결합의 산업적 논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10월 들어 WBD는 자사 스트리밍 부문 등 개별 자산 매각부터 회사 전체 매각까지 다양한 옵션을 검토하는 ‘전략적 대안’ 검토에 착수했다고 공개했다.
파라마운트는 이 과정에 더 유리한 조건으로 참여하려 했다. WBD가 내민 초기 비밀유지계약(NDA)에는 장기간 의무보유(스탠드스틸), 자금조달 접촉에 대한 강한 제한, 매각 절차 관련 법적 권리 포기 등이 포함돼 있었다.
파라마운트 측은 이를 문제 삼으며 스탠드스틸 기간 단축, 다른 입찰자와 동일한 ‘최혜국’ 대우, WBD가 끝내 분할로 되돌아갈 경우 절차를 문제 삼아 다툴 수 있는 권리 등을 요구하며 협상했다. 이미 이때부터 ‘공정한 입찰 절차’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동안 파라마운트는 제한적인 수준의 가상 데이터룸 접근 권한을 받았다. 파라마운트는 이를 “딜 규모와 복잡성에 비해 지나치게 빈약하다”고 평가했다.
11월 중순, 양사는 캘리포니아에서 경영진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고, 양사 경쟁법 자문단도 만나 규제 리스크를 따져보며 “빅테크·스트리밍 공룡이 장악한 시장에서 파라마운트-워너 결합이 오히려 경쟁을 촉진한다”는 논리를 준비했다.
같은 시기 파라마운트 이사회는 엘리슨 일가와 사모펀드 레드버드의 대규모 지분 투자를 심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월가 대형 은행들이 주선하는 540억 달러 규모 선순위 브리지론도 확정했다. 실질적인 ‘실탄’ 확보 작업이었다.
11월 20일 파라마운트는 제안을 또 한 번 상향했다. 인수가격을 주당 25.50달러까지 끌어올렸고, 여전히 현금 비중이 높았다. 이미 서명된 대출 약정과 약속된 지분 투자가 뒷받침됐다.
이 제안에는 50억 달러 규모의 ‘규제 리버스 브레이크업 피’(규제 문제로 딜이 깨질 경우 WBD에 지급하는 위약금)와 더 공격적인 소송 의무도 포함됐다. 필요하다면 규제당국과 끝까지 싸워서라도 딜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은 셈이다. 참고로 넷플릭스는 최종 딜에서 58억 달러의 브레이크업 피를 제시했는데, 블룸버그는 이를 역대 최대급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파라마운트가 조건을 올리는 와중에도, 업계와 시장에선 “워너 내부 주요 인사들은 넷플릭스를 더 선호한다”는 기류가 감지됐다. 순수 스트리밍 사업자라는 정체성과 글로벌 도달 범위가 매력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11월 13일 CNBC 인터뷰에서 WBD 명예회장 존 말론이 파라마운트의 개입을 공개적으로 의문시하고 넷플릭스 딜의 장점을 길게 언급하면서, 시장에선 “워너 수뇌부가 전통 스튜디오 간의 결합보다 스트리밍 중심 연합을 선호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졌다.
결국 12월 4일, WBD는 넷플릭스와의 합병 계약에 서명했다. 복잡한 내부 구조조정과 자산 분할을 거쳐, 스트리밍 사업을 넷플릭스에 넘기는 형태다. 이 딜은 부채 인수 등을 포함해 주당 27.75달러 수준의 가치를 제시했지만, 스핀오프 이후 순부채 규모에 연동된 조정 조항과 최대 21개월에 이르는 딜 종료 시한 등 여러 조건이 붙어 있었다.
파라마운트는 같은 날 자신들이 ‘이전 제안(Prior Proposal)’이라고 부르는 새 안을 다시 WBD에 보냈다고 밝혔다. 이번엔 주당 30달러, 100% 현금 제안이다. 파라마운트는 이 안이 넷플릭스 딜보다 규제 대응 의무도 더 강하고, 종료 시한도 짧고, 재무제표에 연동된 가격 조정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WBD는 넷플릭스를 택했다. 파라마운트는 “더 큰 규제 리스크와 더 긴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재무적으로 명백히 열등한 거래를 선택한 셈”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사회 설득은 물 건너갔다고 보고, 직접 주주들을 향한 공개매수로 방향을 틀었다.
/ 글 Nick Lichtenberg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