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스파고 살려라” 다이먼의 제자 샤프의 재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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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https://www.fortunekorea.co.kr/news/photo/202511/50461_44129_4517.jpg)
찰리 샤프는 그 문서를 또렷이 기억한다. 3162쪽이었다. 과제 6000개. 참여 인원 2만 8000명. 지난 2019년 10월 그가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직후, 웰스파고를 구하기 위해 팀이 만든 복구 계획이었다.
당시 웰스파고는 ‘유령·불필요 계좌’ 파문으로 고객 수백만 명을 속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 강도 높은 규제에 묶여 있었다. 미 연준은 총자산 상한을 걸어 예금 증대를 사실상 봉쇄했다. 은행의 ‘혈류’가 막힌 셈이다.
정상화 과정은 고됐다. 샤프는 매주 월요일 15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2시간씩 직접 주재했다. 부서별 목표 달성 현황을 하나씩 짚었다. 한 핵심 임원은 “찰리가 테이블을 돌며 ‘왜 일정이 밀리나, 왜 뒤처지나’라고 물었다”고 회상했다. 뒤처진 임원에게는 다음 주까지 만회 공식을 가져오라고 다그쳤다. 버티지 못한 사람은 오래 남지 못했다.
초기엔 규제당국의 따가운 이메일이 이어졌다. 샤프는 “일주일 내내 그 일을 살다가 금요일 오후가 되면 공식 공문이 왔다. 표현이 거칠었다”고 말했다. “금요일 밤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야 열어보곤 했다.”
투자자 신뢰는 바닥이었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사태를 알고도 무시했다”고 전 경영진을 비판하며 20여 년 보유한 웰스파고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시가총액은 2018년 2월 3220억 달러에서 2020년 12월 880억 달러로 줄었다.
의회에선 분할 요구가 커졌다.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상원의원은 ‘규범 준수’를 위해 사업부 분리를 요구했고, 셰러드 브라운(Sherrod Brown) 상원의원은 “너무 커서 관리가 불가능하다”고 몰아붙였다.
샤프는 “은행가로서 웰스에서 겪은 일만큼 힘든 과제는 없었다”면서 “각오하고 왔지만 생각보다 훨씬 나빴고 규제 압박도, 정치 압박도 그랬다”고 털어놨다. 당시엔 웰스파고의 해체 가능성까지 언급되던 시기였다.
뉴욕 월가 남쪽을 내려다보는 통유리창 앞, 청바지와 베이지 스니커즈 차림의 샤프가 소파에 앉아 있다. 머리는 짧고 하얗다. 상징처럼 쓰던 둥근 테 안경은 벗었다. 그가 웰스파고 구원 투수로 적임인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커리어 자체가 이 과업을 위한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스미스 바니(Smith Barney)에서 샌디 와일(Sandy Weill)과 일한 주식중개인이었다. 아버지가 CFO로 일하던 1995년, 아들 샤프도 같은 회사의 CFO가 됐다. 13살부터 여름방학이면 뉴저지 웨스트필드에서 아버지와 함께 월가로 통근했다. 거래 데이터 입력, 유가증권 보관 등 백오피스 일을 도맡았다.
존스홉킨스대 재학 시절, 그는 맨해튼 유수 금융사 면접을 보던 중 아버지의 권유로 ‘볼티모어의 작은 회사’ 커머셜 크레디트(Commercial Credit)를 알게 된다. 아버지는 “샌디 와일이 뛰어난 팀을 만들었고,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의 아버지를 아는 친척이 있으니 이력서를 전달해보자”고 했다. 1987년 3월, 샤프는 다이먼 등과 면접을 보고 그 자리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이먼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를 여러 부서에 보냈지만 돌아올 때마다 ‘여기는 엉망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좋아, 내 밑에서 일해.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고 했다.”
회사 분위기는 거칠었다. 낡은 빨간 벨루어 소파, 말썽 많은 팩스, 고장난 냉방기. 다이먼은 ‘찰리스 엔젤스’에 나올 법한 구형 스쿼크박스에 대고 호령했다. 와일과 다이먼은 소리치다 합의하는 스타일이었다.
이후 그는 책임이 더 큰 보직을 거듭 맡았다. 와일과 갈라선 다이먼을 따라 시카고 뱅크원(Bank One)으로 옮겼고, 2012년엔 비자(Visa) CEO를 맡아 실적을 냈다. 돌연 사임한 건 가족 사정 때문이었다. “CEO가 ‘개인적 이유’로 떠난다고 하면 보통 해고됐거나 다른 일이 있는 거다. 내 경우는 정말 개인적 이유였다. 후회하지 않는다.”
샤프는 다이먼의 디테일 집착형, ‘손을 다 올려놓는’ 경영에서 큰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가 더 높이 평가하는 건 리더십의 결이다. “좋은 매니저와 좋은 리더는 다르다. 좋은 리더는 자신의 태도와 방식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사람들이 믿기 때문에 가장 힘든 일에도 따라 나선다. 그게 제이미다.”
회의에서 샤프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온도를 낮춰 해법을 찾는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결단은 냉정하다. “사람 기분 맞추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빠르게 교체한다.” 목표 미달성에 ‘유연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웰스 기업·투자은행 총괄 페르난도 리바스(Fernando Rivas)는 “매우 절제돼 있지만, 성과와 가치엔 타협이 없다”고 말한다. 겉으론 위압적일 수 있으나 ‘속은 따뜻하다’는 증언도 따른다.
웰스파고는 글로벌 금융위기(GFC)를 ‘메인스트리트’ 중심 모델로 상대적으로 무사히 넘겼다. 와코비아(Wachovia)를 인수해 반사이익도 누렸다. 2012년 말엔 미국 대형은행 중 시총 1위를 자랑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위기 후 규제당국은 은행들에 준법·리스크 관리를 대폭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당시 웰스 경영진은 광범위한 통합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COO 스콧 파월(Scott Powell)은 “GFC를 비켜간 데서 나온 오만이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2020년 미 하원 금융위원회 보고서도 같은 결론을 냈다. JP모건 출신으로 긴급 영입된 임원은 웰스의 통제를 “미성숙하고 불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마차를 끄는 80마리 말’이라 불릴 만큼 인수합병으로 얽힌 분권 구조가 문제였다.
최고리스크책임자(CRO)는 표준을 일원화하지 못했다. 웰스 이사회 수석이사 스티브 블랙(Steve Black)은 “리스크 관리를 사업부에 각각 떠넘겼고, 10년 된 수작업 프로세스에 의존했다”고 말했다. 당시 하원 보고서는 CRO가 소비자금융 책임자를 ‘설득’하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기록한다.
결국 ‘유령 계좌’ 사태가 터졌다. 지점에서 ‘교차판매’ 실적을 강요하며 고객 모르게 다계좌를 개설한 관행이 의회 조사로 드러났다. 웰스파고는 80억 달러가 넘는 벌금을 냈다. 미 법무부는 “다층적 리더십 실패”와 “불법 행위의 규모·범위·기간”을 질타했다. 2011~2016년 5000명이 해고됐고, 2017년 CEO와 소비자금융 책임자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보상 6900만 달러가 환수됐다.
샤프는 규제당국 신뢰를 되찾기 위해 ‘본인’을 전면에 세웠다. “세 기관과 매달 공식 회의를 열었지만, 나는 사실상 매주 담당 국장을 직접 불렀다. 우리가 얼마나 진지한지 보여주고 싶었다. 나에게 요구하지 않는 일을 임원들에게 요구하진 않으려 했다.”
변화를 실행하려 그는 통제·준법을 직접 깔고 운영해 본 ‘정예’ 인력을 대거 영입했다. 운영위원 15명 중 13명이 샤프의 사람들이다. COO로 영입한 파월은 뱅크원·JP모건에서 그와 손발을 맞춘 ‘통제 전문가’다. 의외로 CRO는 내부 승진을 택했다. 여러 부문에서 신용리스크를 맡아온 데릭 플라워스(Derek Flowers)를 점찍었다. 지금은 컴플라이언스·오퍼레이션까지 총괄하는 기업 CRO로 이사회 리스크위원회와 샤프에게 직보한다. 샤프는 “웰스의 최고 인재는 꼭 꼭대기에 있지 않았다. 중간·상위중간층에 많았다. 그들을 승진시켰다. 내부 사기를 올리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동의명령을 해소하고 새 체계를 유지할 방대한 인프라에 투자를 퍼부었다. 리스크 관리 연간 비용은 취임 전보다 25억 달러 늘었다. 사업부 내 리스크 담당자는 1만 명 증원됐다. 신용·운영·준법을 모니터하는 인력이 두 배가 됐다.
7년 동안 자산 상한(1조 9500억 달러)은 웰스의 예금·증권 보유를 묶었다. “놓친 고객 자금이 6000억 달러쯤 될 것”이라고 샤프는 추정한다. 그 사이 JP모건·뱅크오브아메리카·씨티는 각각 자산을 58%, 40%, 34% 늘렸다. 순이자이익은 경쟁사와 달리 정체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자수익 제한’을 피할 수 있는 수수료 기반 사업을 키웠다. 경영진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맨해튼으로 옮기며 투자은행(IB)에 집중했다. 웰스의 상업은행은 이미 미국 최대 수준이었다. 고객사 다수가 인수·지분·채권 조달 자문을 필요로 했다.
신용카드도 손봤다. “팬데믹 전 웰스는 프리미엄 카드에서 존재감이 없었다”고 ‘더 포인츠 가이’ 창업자 브라이언 켈리는 말한다. 부유층 승인이 잦은 오탐으로 막히고, 한도도 인색했다. 샤프 본인 카드가 런던 식당에서 결제 거절된 일도 있었다. 샤프는 IT 업그레이드, 한도 정책 개선, 스티브 마틴·마틴 쇼트가 나오는 코믹 광고까지 밀어붙였다. ‘빌트(Bilt)’ 제휴카드처럼 삐끗한 사례도 있었지만 Z세대 접점은 넓혔다. 2020~2024년 카드 결제액과 잔액은 모두 두 배가 됐다. 제이미 다이먼은 “아멕스·체이스와 경쟁하긴 쉽지 않지만, 웰스는 4000만 명이 넘는 고객 기반이 있다. 도전해야 한다”고 했다.
비용 절감도 병행했다. “대기업엔 쓸데없는 ‘두 겹’이 종종 있다.” 그는 HR·법무·IT 등 중복 기능을 통합했다. 고위 임원 직속 보고자는 최소 7명으로 늘렸다(이전의 두 배). 유휴 부동산도 줄였다. 2019~2024년 글로벌 면적은 8700만 평방피트에서 6030만 평방피트로 축소됐고, 사옥은 650동에서 400동으로 줄었다. 샤프 부임 당시 웰스는 매출이 JP모건의 4분의 3이었지만 직원 수는 6% 더 많았다. 지금 인원은 약 21만 명으로 25% 가까이 감소했다. 주택담보대출 등 자본규제 강화로 수익성이 낮고, 차압 급증 시 평판 리스크가 큰 사업은 의도적으로 축소했다.
앞으로의 성배는 ‘ROTCE(유형 보통주자본수익률)’다. 지난해 웰스의 ROTCE는 13.4%였다. 씨티(7%)를 앞섰고, 뱅크오브아메리카와 비슷했다. JP모건(20%)에는 미치지 못했다. 샤프는 한때 달성하기 어려워 보이던 15%를 목표로 걸었다. 2025년 상반기 평균 14.4%까지 올라섰다. 15%는 중간 경유지일 뿐이다. 그의 시선은 업계 정상에 닿아 있다.
변화의 크기는 올해 5월 분명해졌다. 그는 생애 가장 중요한 전화 중 하나를 받았다. 연준의 한 고위 인사가 축하 인사를 전했다. 곧 자산 상한이 풀릴 것이라는 통보였다. 6월 3일 공식 발표가 나자, 그는 참모들과 샴페인을 들었다. 안도감이 고였다.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트루이스트 시큐리티즈의 존 맥도널드는 “샤프는 회사를 다이어트에 성공시켰다. 이제는 근육을 키울 차례”라고 비유했다.
샤프 취임 당시 52달러였던 주가는 10월 초 81달러. 배당을 포함한 연평균 수익률은 11.1%다. JP모건(198.7%)에는 못 미치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11.2%)와 비슷하고 씨티(9.2%)와 KBW 은행지수(10.0%)를 웃돈다.
JP모건·피서브(Fiserv) 전 CEO이자 현재 사회보장국 커미셔너 겸 국세청 CEO인 프랭크 비시그나노는 말했다. “그가 맡았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용감했다. 훌륭한 코치는 훌륭한 코치진을 데려온다. 샤프가 그랬다.”
최악의 터널을 빠져나온 샤프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곧 결혼하는 딸, 롱아일랜드 렘슨버그에서 보내는 주말. 그는 목공으로 머리를 식힌다. 맞춤 책장과 몰딩을 손수 만든다. 다이먼은 “목공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CEO는 아마 그가 유일할 것”이라고 농담한다.
다이먼은 제자의 성취를 치켜세운다. “자산 상한이 풀린 지금, 웰스는 다시 성장에 집중할 수 있다. 샤프는 훌륭한 일을 했다.” 다만 친구로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했으면 더 빨랐을 거다.” 6000개의 과제를 끝낸 샤프는 자신의 타임라인으로 일을 마쳤다. 웰스파고의 마차는 다시 굴러간다.
/ 글 Shawn Tully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